`갑`PD의 `을`PD 폭행사건 1년.."이젠 좀 나아졌나요?"

2015년 6월 24일 `을`이던 독립PD가 방송사 PD에 폭행 당해
독립PD들의 연대 시위..언어폭력 등 감소 성과 이뤄내
열악한 방송제작환경 구조 여전..제도적 보완 시급
  • 등록 2016-06-25 오전 10:06:59

    수정 2016-06-25 오전 10:06:59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지금으로부터 1년 전, 2015년 6월 24일 밤 폭행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방송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던 PD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갑의 위치에 있던 PD는 때렸고 을이었던 PD는 맞았다.

을 PD는 종합편성채널 MBN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독립PD였다. 방송사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PD다. 갑 PD는 MBN 정규직 PD였다. 사건은 술자리에서 일어난 정규직 PD와 독립 PD 간 개인적인 사건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을 PD는 안면부에 큰 부상을 입었다. 단순 술자리 시비도 아니었다. 을 PD가 갑 PD에 자신의 제작물을 보여주던 ‘시사’중 발생했다. 업무중 폭행이었다.

외부로 알려지고 언론 보도까지 되자 을 PD는 잠적했다. 마음의 부담이 컸다. 생계가 걸린 방송국에 직접 대항하기 힘들었다. 이 사건은 방송 시장에 널린 PD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 했다.

‘갑’에 대항한 ‘을’ PD 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피해자와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 동료들이 들고 일어난 것. 비슷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독립PD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방송사의 프로그램 외주를 받아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혹여 갑인 방송사의 미움을 받으면 생계가 끊길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 해 7월 16일부터 해당 방송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책임자의 사과와 문제를 일으킨 PD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2015년 8월 10일 MBN 본사 앞에서 열린 항의 시위 모습 (화면 캡처)
처음에는 억울한 후배를 돕자는 취지였다. 이후에는 그들 자신, 독립PD들의 처한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 개선하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7주 동안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복진오 한국독립PD협회 권익위원회 위원장은 “그간 폭행 사건은 있었지만 실제로 피해자가 침묵해 알려진 경우가 거의 없었다”며 “지난 MBN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군지 뚜렷했고 폭행 당했던 상황이 비상식적이어서 동료 PD들의 공분했다”고 말했다.

독립PD가 힘을 합쳐 목소리를 높이자 요지부동이었던 방송사가 움직였다. MBN은 9월 2일 제작본부장이 제작사를 찾아 사과의 뜻을 전했다. 독립PD들도 수긍했고 1인 시위를 중단했다.

복진오 한국독립PD협회 권익위원장
한국독립PD협회는 이후 독립PD들의 권익 신장에 나섰다. 방송 업계 만연된 갑을 문화 개선에 조력하기로 했다. 독립PD들의 상황을 담은 자료집을 만들었다. 2015년도 국정감사에서 독립PD들의 처한 현실을 정식으로 알렸고 안건으로 삼았다.

을이 모여 만든 기적은 정부 관계자들의 인식 변화에도 영향을 줬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올해 정책 목표중 하나를 ‘독립·외주제작사들의 제작환경 개선’으로 삼았다.

복 위원장은 “사건 이후 상당 부분 개선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성과는 방송사 PD들의 태도 변화였다. 자신들의 업무를 외주받는 하도급 업자가 아닌 동료로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전했다.

시위에 나선 PD들에 대한 방송사들의 보복도 없었다. 폭행을 당했던 PD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현재는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단순 폭행 사건으로 묻힐 뻔한 MBN PD 폭행 사건은 전체 독립PD들의 권익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주며 마무리됐다. 독립PD가 방송업계 약자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퍼진 게 최대 성과였다.

아직 갈길이 멀다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으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갑인 방송사와 제작 계약을 하는데 제대로 된 계약서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한국독립PD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펴낸 ‘독립PD 노동 인권 긴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독립PD들이 계약서없이 장시간 저혈한 노동 환경에 노출돼 있다.

조사 대상 독립PD 174명중 1.7%인 3명만이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표준계약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복 위원장은 “정부의 권고 사항으로 현장에서는 강제할 수 없어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표준계약서 없이 일을 하다보니 수입 또한 안정되지 못했다. 방송사가 제작사에 하도급을 주고 그 일을 다시 독립PD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임금 체불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 비율은 방송사와 직접 일을 하는 PD나 독립·외주제작사에 소속해 일하는 PD에 상관없이 높았다. 소속 회사(독립·외주제작사)가 있을 때 체불 경험이 61.3%, 없을 때 63.8%였다. 열악한 외주제작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통계다.

임금 체불보다 더 힘든 것은 인권 침해다. 독립PD협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123명중 ‘인격 무시와 관련된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84.6%(104명)이었다. 응답중에는 ‘폭언은 항상 따라다닌다’, ‘외주에선 비일비재하다’라는 답변이 많았다.

개중에는 폭행이나 성폭력에 노출된 경우도 많았다. 폭력 경험 유무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96명)중 17.7%(17명)이 ‘당한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독립PD협회는 신상 공개를 염려해 응답하지 않은 독립PD가 많아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성폭력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87명의 응답자중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적이 있다고 대답한 숫자가 14명, 비율로는 16.1%였다. 가해자는 방송사 소속 관리자나 직원(45.5%, 복수응답), 독립제작사 소속 관리자나 직원(22.7%)였다.

독립PD들은 현재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돼야할 제도로 ‘공정거래환경 구축(최저임금 가이드라인, 저작권)’, ‘4대 보험 등 사회 안전망 확충’, ‘표준 계약서 도입 및 강제화’를 꼽았다. 노동 기본 인권 확립이 기본적으로 전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제도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선순환 구조다. 방송사가 정당한 프로그램 제작비를 설정하고 독립PD의 성과를 합리적으로 정산하는 구조다. 독립PD로 활동중인 양갑열 PD는 “선순환 구조의 핵심은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가 돼야 한다”며 “영국이나 일본의 공영방송과 달리 우리나라 공영방송사들은 그 부분에 있어 등한시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순환 구조를 빨리 만들지 않으면 우리나라 방송 제작 환경 자체가 공동화될 것”이라며 “무섭게 발전하는 중국 방송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라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독립PD, 독립PD협회는?

독립PD는 방송제작과 기획 능력을 가진 전문 인력이지만 방송사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을 뜻한다. 조연출처럼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PD들은 외주제작사에 소속돼 일하는 경우가 많다. 연차가 올라가면 본인이 직접 방송사에 제작 외주를 받거나 본인만의 창작물을 만들곤 한다.

21일 인터뷰에 응했던 복진오 위원장과 양 PD도 숙련된 PD였다. 복 PD는 세월호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다. 보수와는 상관없이 본인 스스로 하는 일이었다.

이들이 속한 한국독립PD협회는 2007년 독립PD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설립됐다. 등록된 회원수는 700명이다. 이중 회비를 내는 실제 회원은 300명 가량이다. 협회 추정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독립PD 숫자는 1700명 정도 된다.

최근 들어 독립PD에 대한 정의가 재논의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PD라는 직군은 방송에 내보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로 정의됐다. 지금도 이 같은 정의는 변함이 없지만 뉴미디어 시대에 ‘별종’들이 나오면서 모호하게 됐다.

먼저는 방송사 없이도 방송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할 수 있게 된 환경이다. 유튜브 등 인터넷 방송 플랫폼의 등장 덕분이다. ‘뉴스타파’같은 독립 언론은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10년 넘게 인터넷 방송 콘텐츠를 만들어왔던 1인 미디어 ‘미디어몽구’는 업계 내에서 ‘동업자 겸 동료’로 인식될 정도다.

멀티채널네트워크(MCN)를 기반으로 한 동영상 제작사들이 많이 생긴 것도 독립PD 정의를 흔들고 있다. 누구나 방송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서 PD가 아니더라도 영상을 제작 편집하고 팬을 모을 수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영향력이 생긴 것이다. 복 위원장은 “방송산업 구조 변화에 따라 독립PD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내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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