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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찾은 현대제철(004020) 당진제철소 후판공장은 뜨거운 열기만큼 내진용 강재 생산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반도에도 크고 작은 지진이 빈번히 일어나면서 건축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제 건물을 지을 때 내진 설계 적용 및 내진용 강재 사용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판매량도 증가했다. 개발 초기인 2006년 400t에 불과했던 SHN(건축구조용 열간압연 H형강) 판매량은 2014년 27만9000t에서 2016년 58만9000t으로 2년새 2배나 증가했다.
불순물 빼고 온도 조절..내화 성능까지 겸한 강재 개발
내진(耐震)용 강재는 말그대로 지진을 견디는 성능을 갖춘 제품이다. 일반적으로 강재(Steel)는 콘크리트에 비해 잘 늘어나는 성질(연성, 延性)을 갖고 있다.따라서 지진과 같은 외력에 대해 저항하는 성능이 높아 건물 전체가 구조적으로 충격을 흡수하면서 붕괴를 지연시켜 대피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내진용 강재는 후판, H형강, 원형강관, 철근 등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건설용 강재와 종류는 같다. 소재와 공법에 차이를 줌으로써 일반 강재가 생산되는 공장에서 선택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소재 측면에서는 애초에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들고 제강하는 과정에서 불순물인 인(P)과 황(S)을 많이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일반 제품보다 인과 황의 함량을 절반 이하로 통제해야 철강 고유의 연성을 보다 높일 수 있다. 공법 측면에서는 압연 과정에서 온도 조절 등을 통해 내진 성능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제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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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 차장은 “H빔, 철근, 플레이트, 각관 등 건축에 사용되는 4종류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고 만들 수 있는 제철소는 국내에서 현대제철이 유일하다”며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제철은 지난 1분기에 내화(耐火, 열에 견디는 것) 성능까지 더한 ‘내진·내화용 복합강재(후판)’ 시편(소재)을 개발했고 5월부터는 국내 최초로 내진·내화용 강재로 만든 실제 구조물에 대한 내화 성능 평가에 착수한다. 내년 안에 성능 평가와 인증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005490), 동국제강(001230) 등도 내진용 강재를 만들고 있지만 내진과 내화 특성을 모두 가진 강재가 최종 성능 평가를 완료하는 것은 현대제철이 처음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2005년 국내 최초로 내진성능이 확보된 SHN을 개발했고 2013년에는 국내 최초로 내진용 철근 SD400S를 출시하는 등 내진용 강재 분야를 선도해왔다. 개발 초기 내진용 건축자재에 대한 산업규격이나 수요처도 없었지만 현대제철은 건축물 안전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R&D에 나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내진용 강재 시장을 개척했다. 자동차용 초고장력 강판처럼 현대제철의 고부가 제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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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이 개발한 SHN은 국내 주요 건축물인 잠실 롯데월드타워, IFC, 일산 킨텍스 등에 적용됐다. 해외 화력발전소와 제2 남극기지 등 극한의 환경에 건설된 구조물에도 사용됐다. 앞으로 서울 시내 초고층 빌딩이 잇따라 지어질 예정인 만큼 내진용 강재 수요는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제철은 건설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 현대건설(000720) 등과의 협업을 통해 내진용 강재 적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다만 홍보와 시장의 인식 부족으로 아직까지 공급이 제한적이다. 강구조에 많이 사용되는 H형강의 경우 내진용 강재의 사용비율이 2012년 4%에서 2016년 21% 수준으로 상승했지만 아직 낮은 수준이다. 내진용 철근은 시장도입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작년에 내진설계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개정이 이뤄지면서 내진용 강재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며 “고부가 제품인 내진용 강재라는 틈새시장 개척은 철강 수요 침체기에 수익성을 끌어올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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