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4세(1922년생)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 회장은 회사 경영을 언제까지 직접 챙길 것이냐는 주변의 질문을 받으면 늘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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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총괄 회장이 각종 경영 수치들을 정확하게 기억하며 송곳 질문을 쏟아내 보고에 들어간 계열사 대표들을 땀흘리게 만들었다는 일화는 롯데그룹내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구순이 넘은 신 총괄 회장의 강한 기업 경영의지가 결국 사단을 만들었다.
신 총괄 회장은 지난해 12월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수억 엔의 손해를 회사에 끼쳤다는 이유로 그를 일본 롯데 주요 임원직에서 모두 해임한다. 회삿돈으로 투자를 하면서 보고도 하지 않았고, 회사에 결국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버지가 반 년만에 해임카드를 장남과 차남에게 번갈아 주는 사이 두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앞세웠다가 반대로 무시하기도 하며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해임 카드를 먼저 받았던 장남은 석고대죄로 아버지 마음을 다시 얻었으나, 해임 카드를 나중에 받았던 차남은 아버지의 뜻과 상관없이 홀로서기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싸움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싸움을 종식 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신격호 총괄 회장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신 총괄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나 회사 내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그는 그룹내 부동의 1인자다. 차남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의 해임 지시를 절차상 문제를 이유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지만, 신 회장이 아버지와 정면 대결을 펼쳤을 때 승리를 장담하기는 힘들다.
신 총괄회장은 빈손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대기업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단돈 5만엔을 빌려 오일 공장을 차리고 이후 껌 제조를 통해 일본 제과업계를 평정한 `롯데` 기업을 일군 것은 일본 재계에서도 유명한 얘기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신동빈 회장 역시 한국 롯데그룹 경영을 맡은 지 10년만에 23조원 이던 그룹 매출을 80조원으로 끌어올리며 롯데를 재계 5위 기업으로 키워내 아버지의 경영 능력을 빼다 박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 역시 일본 제과업계에서 롯데의 명성을 계속 유지해오는 등 경영성과를 보여줬다.
신 총괄회장이 자신에게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사 경영을 잘 해온 두 아들에게 해임카드를 남발하는 사이 롯데그룹은 세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롯데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의 민낯이 드러나고 가족 간 경영권을 두고 싸우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자 롯데의 제품과 기업 문화를 좋아했던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
`오늘 할 일과 내일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궁리`한다는 신 총괄 회장이 현재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을 우선 끝내는 것이다. 싸움이 장기화 될 수록 그가 삶처럼 소중히 여겼던 기업 `롯데`의 상처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