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에 155만원 태워"…시가 '맛과 멋'에 빠진 부자들[찐부자 리포트]

오랜 시간 부유층과 권력자의 상징적 기호식품
시가,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향기
제대로 즐기려면 충분한 시간·자신만의 장소 필요
와인·위스키처럼 숙성·보관 정도따라 품질 차이 극명
가격 1만원대부터 수천만원까지 천차만별
  • 등록 2022-04-03 오후 2:48:12

    수정 2022-11-18 오후 12:18:53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시가의 냄새는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향기라고 보면 됩니다. 와인과 위스키처럼 고급일 수록 희소하고 맛이 좋죠. 눈을 감고 코 끝을 자극하는 마른 풀이나 나뭇잎이 타는 향을 느끼다 보면 왜 사람들이 시가의 멋에 빠지는지 알 수 있죠.”

▲‘피에르시가’ 용산점에 진열된 시가 제품. (사진=백주아 기자)
시가는 부와 권력을 쥔 사람들이 즐기는 대표적인 기호 식품 중 하나다. 시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에는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정치인 블라디미르 레닌,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등이 있다. 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시가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강력한 정치 지도자나 권력가, 성공한 자본가는 담배나 전자담배 대신 시가를 즐긴다.

한국에서 시가가 부자들의 취미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가는 누구든 살 수 있지만 누구나 즐길 수 없다. 오랜 시간 여유롭게 즐기려면 구입 비용은 물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시가는 1~2분이면 태우는 담배와 달리 한 대를 다 태우는데 짧게는 30분~1시간이 소요된다. 한 번 피울 때 냄새가 짙게 배기 때문에 허가된 장소나 개인 공간이 아니면 피우기 힘들다. 자가를 보유하지 않는 이상 개인이 취미로 온전히 즐기기 어려운 셈이다. 기호식품이지만 시가가 담배와 달리 보편화되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 2일 피에르 코헨 아크닌 ‘피에르 시가’ 대표가 시가 태우는 법을 전수 중이다. 한국에 온지 40여년이 된 이후 그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쿠바산 시가를 국내에 독점 공급하는 시가 최고 전문가다. (사진=백주아 기자)
담뱃잎으로 만들지만 시가와 담배는 엄연히 다르다. 일반 담배가 폐로 호흡해 연기를 들이마시고 뱉는다면 시가는 혀 끝으로 연기를 돌려 입에 머금고 뱉은 후 코로 향기를 느끼는 게 특징이다. 담배보다 니코틴이 많지만 화학약품 없이 100% 유기농 담뱃잎으로 만든다. 담뱃잎을 건조한 후 수개월부터 길게는 10년 이상 정교한 숙성 과정 거친 뒤, 원료 그대로 포장해 내놓은 게 시가다. 어떤 품질의 담뱃잎을 쓰느냐에 따라 시가의 품질이 나뉜다.

2일 만난 쿠바 시가 국내 독점 판매권을 보유한 ‘피에르 시가’의 피에르 코헨 아크닌 대표는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는 자유”라며 “시가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으려면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시가를 음미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가는 맛은 물론 멋까지 누릴 수 있는 격이 높은 사치품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피에르는 시가는 단순히 허세를 위한 사치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가격을 떠나 모든 명품이 그렇듯 시가에는 오랜 역사가 있고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시가에 열광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시가의 세계는 와인과 위스키의 세계처럼, 단순하지 않고 까다롭다.

시가를 진지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 독학도 가능하지만 시가를 고르고 헤드를 자르고 불을 붙이고 피우고 맛과 향을 느끼는 모든 과정이 공부다. 감각은 배우면 배울수록 더 단련된다. 무엇이든 단순히 좋다고 느끼는 것을 넘어 왜 좋은지, 무엇이 좋은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꾸준함과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시가 입문자에게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시가 맛과 향기를 구분한 표. (사진=레솔베르 제공)
시가는 원산지별로 쿠바산과 비 쿠바산으로 구분한다. 이 중 시가의 왕은 단연 쿠바산이다. 쿠바의 따듯한 기후와 80% 이상의 습도와 모래 토질 등의 자연환경은 담뱃잎이 자라기 최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가 시장의 70%는 쿠바산이 차지한다. 대표 브랜드로 ‘코히바(Cohiba)’, ‘트리니다드(Trinidad)’가 있다. 이들 브랜드는 시가계의 ‘에르메스’이자 ‘샤넬’로 불린다. 이 외 ‘몬테크리스토(Montecristo)’, ‘로메오 이 훌리에타(Romeo y Julieta)’, ‘호요 드 몬테레이(Hoyo De Monterrey)’ 등이 인기가 높다.

쿠바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 쿠바산 시가의 대표 원산지는 도미니카공화국이다. 지난 1959년 쿠바 카스트로 혁명 이후 현지 시가 업체들이 도미니카로 생산지를 옮기면서부터 경쟁력이 높아졌다. 도미니카 시가를 대표하는 브랜드에는 ‘시가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다비도프(davidoff)’가 있다. 100년 역사를 지닌 이 브랜드의 국내 독점 판매권은 브루벨코리아가 가지고 있다. 인근 온두라스나 니카라과 등에서 좋은 품질의 담뱃잎이 생산된다. 주요 생산지에서 확보한 고품질 담뱃잎을 모아 만든 시가 브랜드로는 미국의 ‘구르카(Gurkha)’, ‘록키 파텔(Rocky Patel)’ 등이 있다.

▲레솔베르 청담점에 진열된 다비도프 시가. 다비도프 시가는 브루벨 코리아가 독점 판매한다.(사진=백주아 기자)
시가는 종류만큼이나 가격도 한 스틱당 1만원대부터 수십~수백만원까지 다양하게 형성돼 있다. 이따금 시가 마니아를 위해 한정판으로 나온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제품은 한 세트에 수억원에 달한다. 한 대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셈이다. 시가 애호가들은 불쾌한 향이 느껴지지 않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가는 스틱당 4만원 이상이 보통이라고 말한다. 비싸다고 다 맛있는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싼 건 맛이 없다는 설명이다. 고가의 와인이나 위스키를 즐기는 사람의 입맛이 떨어지기 어려운 것처럼 시가 또한 좋은 것을 맛보고 높아진 입맛을 낮추기 어렵다.

현재 국내 시가 시장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정확한 데이터는 없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보니 일반 고객 사이에서 벌어지는 온라인 불법 거래, 해외 불법 유통 문제도 심각하다. 업계에 따르면 온라인과 해외 직구 등이 보편화한 이후 시가 업체 매출은 전보다 60~90%까지 떨어졌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물류가 막히면서 불법 유통이 줄어들어, 역설적으로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반등한 상태다.

규제 강화로 국내에서 시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과거에는 식당, 호텔, 바 등 어디서든 즐길 수 있었지만 정부 금연 정책이 강화하면서 시가 산업도 타격을 입었다. 지난 2015년 실내 흡연이 금지된 것을 기점으로 시장이 본적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몇몇 합법 시가숍 덕분에 일반인도 시가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고 있다. 시가숍은 편의점처럼 담배 소매권을 보유해야 운영할 수 있다. 우리보다 시가 시장이 약 10~20배 이상 큰 일본, 홍콩의 경우 한 시가숍별로 여러 브랜드의 시가 유통하고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수입 업체별로 따로 계약을 하지 않으면 여러 브랜드를 동시에 판매할 수 없다.

이 중 국내에서 가장 다양한 시가를 취급하는 대표적인 시가숍은 ‘레솔베르’다. 레솔베르는 각 복수의 수입사와 계약을 통해 쿠바산과 비 쿠바산 시가를 동시에 확보해 약 300종류 이상의 시가를 취급한다. 이 중 가장 고가의 시가는 다비도프의 ‘ORO BLANCO’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스틱 하나당 가격은 155만원이다. 이요한 레솔베르 대표는 “국내에 시가를 파는 곳이 많지만 까다롭게 습도를 유지해 시가를 진열하는 ‘워크인 휴미드’를 마련한 곳은 많지 않다”며 “휴미더(보관함), 가위, 커터, 튜브, 재떨이 등 희소하고 독특하고 세련된 시가 관련 고가 액세서리를 동시에 판매하는 곳도 우리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레솔베르 청담에서 판매하는 도미니카공화국의 노바 플래넘 ‘Batch Toro’ 시가. 최소 10~15년 숙성한 담뱃잎으로 만든 제품으로 다비도프에 견줄 만큼 고급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한 스틱당 가격은 4만원대. (사진=백주아 기자)
시가가 소수만이 즐기는 기호식품인 것은 사실이나 최근 들어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영화나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이미지’가 ‘힙한’ 젊은층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어린 마니아들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조용범 브루벨코리아 다비도프 팀장은 “최근 배우 이병헌이 영화 ‘마스터’에서 시가를 피우고, 힙합 아티스트 더콰이엇이 시가 애호가라는 게 알려지면서 많은 젊은 층 소비자가 유입되기도 했다”며 “여유가 없으면 즐기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시가 시장은 꾸준히 더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를 통해 직접 느낀 시가의 첫인상은 강력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다만 부작용이 있다면 빈속에 두꺼운 시가를 너무 많이 태우면 일반 담배와 마찬가지로 ‘니코틴 펀치’가 올 수 있다. 시가를 피우려면 정돈된 마음과 단련된 체력이 필요하다. 마이클 조던은 하루에 ‘로부스토(두툼한 시가)’를 세 대를 태운다며 건강을 자랑하기도 한다고 한다. 니코틴과 수명 간 상관 관계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지만 오랜 시간 태우면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홈런 신기록 달성
  • 꼼짝 마
  • 돌발 상황
  • 우승의 짜릿함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