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대기근의 고통을 이기려 시작된 탈북민들의 물결은 2009년 2900여명으로 최고점을 찍었고 이제는 매년 1300~1500여명의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오고 있다. 또 탈북 동기도 변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인 동기가 가장 크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단순 생존형 탈북이 아니라 더 좋은 환경에서 자녀들이 자라길 바라며 한국으로 오고 있다. 다시 말해 생계형 탈출이 아니라 투자형 이민인 것이다.
하지만 탈북자들의 한국 이민생활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 이유는 복잡하다. 우선 일반적으로 이민자가 겪는 단절감과 소외감이다. 낯선 외국에서 정착하면서 겪는 경험이다. 그 단절감과 소외감을 탈북인도 겪는다. 원인은 문화적이기 보단 제도적이다. 배급과 배치로 상징되는 사회주의적 질서에서 경쟁과 선택이라는 시장 자유주의적 질서로 적응하는 과정은 매우 혼돈스럽고 고통스러운 듯하다. 소련 붕괴 후 체제전환 과정에서 자살률이 급등한 사실을 생각하면 공감이 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민자로서의 단절감, 소외감, 그리고 기대에 못 미치는 현실에 더해 그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배신감이다. 같은 한민족이라는 사실, 그래서 한국으로 가는 것이 낯선 제3국으로 가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기만 한 듯하다. 북에서 말이 많던 학생도 학교에서 한두 번 놀림을 당하면 벙어리가 되고 아무리 인정받는 엘리트였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인정사정 없이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히려 남의 나라에 가면 그런 대접을 받아도 참고 견딜 텐데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라고 요란히 떠드는 곳에서 받는 차가운 대접이 더 견디기 힘든 것이다.
최근 탈북자 몇 분과 만나 식사를 했다. 나름 한국 사회에서 잘 적응해서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매우 불안하다고 한다. 북에서는 탈북자들을 돌아오라고 공공연히 압박하고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탈북민들을 강제 북송시켰다는 애기를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고 한다. 또 남한사회에서는 과연 우리가 이 사회에서 환영받는 존재인가 아니면 미운 오리새끼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고 한다. 게다가 새 정부는 남북관계 회복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정작 이미 통일을 이루며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전 정부보다도 더 무관심한 듯 하다고 한다.
3만 명이 넘는 탈북민들이 이미 이곳에서 작은 통일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들이 진심에서 우러나 북한의 친지와 친구들에게 남한사회가 얼마나 평안하고 행복한지 전할 때 비로소 북한 주민들은 지배층의 선전 문구를 찢어버리고 통일을 위해 힘을 낼 것이다.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와야 할 텐데 오늘의 현실은 정 반대인 듯하다. 통일을 통해 만들 새로운 코리아, 이민 오고 싶은 코리아의 꿈은 탈북민들의 마음을 얻는 순간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