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8일간의 '강제휴가'

공항 폐쇄, '남 일'에서 '내 일'되자 그제야 긴장
폐쇄 연장으로 회사에 '강제휴가' 보고 땐 '진땀'
르포 취재하며 공황 상황 확인…돈 문제 등 '혼란' 더 커져
공항 재개와 항공사 운항 결정은 별개…현재도 '캔슬' 이어져
  • 등록 2017-12-03 오후 5:42:51

    수정 2017-12-04 오전 7:23:22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객 등이 짱구(Canggu) 지역 해변에서 서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인도네시아 발리=글·사진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지금은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지만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8일은 평생 기억에 남을 여행이다. 화산 분화 덕(?)에 어쩔 수 없었던 강제휴가. ‘강제’는 답답했지만 ‘휴가’는 달콤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을 정리해 본다.

화산분화는 남의 일…서퍼들의 천국 만끽하다

11월 26일 오전 1시(현지시각) 발리 응우라라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다짜고짜 전날 오후 5시 발리 섬 최고봉인 아궁 화산에서 분화가 본격화했다는 기사를 카카오톡으로 보내고서는 “기자가 기사도 안 보고 잘한다”며 비아냥댔다.

공항 인근 숙소에 도착해 기사를 찾아봤다. 1963년 이후 50여년 만인 지난 11월 21일에 이어 25일 또 화산이 분화했다는 기사들이 줄줄이 떴다. 그러나 ‘당국은 경보수위를 높이지 않았다’는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공항은 아궁화산에서 60km 떨어진 곳이다. ‘별문제 없겠구나’ 싶어 침대에 누워 서핑 강습 영상을 보다 잠들었다.

이른 아침 짱구(Canggu) 지역으로 이동해 서핑 강습을 받았다. 물이 맑아 바닷속이 다 들여다보인다. ‘서퍼들의 천국’, ‘롱보드의 성지’라 불리는 만큼 국내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파도 또한 크고 안정적이었다. 열심히 타면 중급으로 올라설 수 있겠다는 설렘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3일간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지낼 서퍼들과 금새 친해졌다. 오전엔 서핑 저녁엔 술자리. 행복했다. 머릿속에 ‘화산’, ‘분화’ 이런 단어들이 들어올 공간이 없었다.

지난 11월 26일 발리 짱구(Canggu) 지역 해변에서 여행객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인도네시아 화산지질재난예방센터(PVMBG)는 27일 오전 6시부터 분화 위험 경보를 3단계에서 최고단계인 4단계로 올리고 응우라라이 공항을 폐쇄했다. 45개 항공편이 취소되고 약 5만 9000명 승객이 발이 묶였다.

함께 서핑을 즐기던 한 서퍼는 “화산이 터져 휴가가 연장되는 사람은 전 세계 몇 명 없을 것”이라며 좋아했다. “부럽다. 천운이다”며 같이 기뻐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29일 새벽. 그때까지는 풀리려니 했다.

28일 오전 인도네시아 당국이 공항 폐쇄를 24시간 연장했다. 제때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스마트폰을 들고 살았다. 틈날 때마다 포털사이트에 ‘발리’, ‘공항폐쇄’, ‘화산’ 등을 검색했다.

출발 예정 당일. 공항 폐쇄는 풀리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회사에 상황 보고를 했다. 휴가 대신 근무를 시작했다. 현지 상황에 대한 스케치, 르포 기사 지시가 내려왔다. 속모르는 회사 동기들은 “우와, 발리 특파원이라니 멋있다”며 부러워했다.

인도네시아 발리 아궁화산 폭발 조짐의 영향으로 폐쇄된 지 사흘째인 29일 오후 2시 응우라라이 공항에 현지 한국대사관에서 나온 직원들이 여행객들을 상담하고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버스 이동만 15시간…하지만 “문제는 시간보다 돈”

29일 숙소에서 노트북을 빌려 응우라라이 공항으로 향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이 설치한 안내 데스크를 찾았다. 한국대사관 측은 이날 오전부터 수라바야 주안다 국제공항으로 가는 무료 버스를 운영 중이었다. 이날 오전에만 200여 명의 한국 관광객들이 이 버스를 이용했다. 그러나 수라바야 주안다 국제공항으로 이동한다 해서 귀국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응우라라이에서 수라바야까지는 약 400㎞다. 비포장도로가 많고 중간에 강이 있어 일정 구간 배로 버스를 옮겨야 하는 등 이동에만 약 15시간이 걸린다. 규모가 작은 수라바야에는 국제선이 몇 없어 한국행 비행기를 구할 수 있는 확률은 낮다. 조만간 바람 방향이 바뀌어 공항이 화산재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도 했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대사관 측이 제공하는 수라바야행 버스가 무료지만 자카르타까지, 또 한국까지 비행기 삯은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고등학교 학원 강사 백모(34)씨는 “모르긴 몰라도 100만원 정도는 더 들 것”이라고 푸념했다. 한국 정부가 수라바야로 아시아나 전세기를 띄우기로 결정하기 전 상황이다.

29일 오후 3시 공항 운영이 재개된 발리 응우라라이 공항에 여행객들이 붐비고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공항폐쇄 풀렸지만 항공편 취소 이어져

출근했어야 할 날인 30일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자마자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확실한 비행 일정을 물은 뒤 가장 빠른 날짜인 12월 2일 오전 1시 비행기표를 끊었다. 회사에 또다시 상황 보고를 했다. 공항 폐쇄가 풀렸지만 항공사 운항 재개는 별개의 문제였던 터라 초조함은 가시지 않았다. 항공기 운항에 대한 기준이 항공사마다 달라 여전히 운행하지 않는 업체가 있는 것이다. 더는 상황이 변동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혼란은 계속됐다. 대한항공에서 응우라라이에 전세기를 보낸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발리 여행객 커뮤니티에서는 ‘대한항공 티켓을 소지한 사람들이 탑승한 뒤 남은 좌석에 다른 항공사 승객들이 차액을 지불하고 선착순으로 탈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예약한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당장 공항으로 뛰어가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이미 대한항공 전세기는 179명을 싣고 인천으로 향했다.

항공사의 비행기 운항 결정 여부, 전세기 소란 등으로 하루종일 맘을 졸인 상태에서 이날 오후 공항에 갔다. 다행히 예약했던 항공사는 일정대로 비행기를 띄웠다.

12월 2일 오전.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다.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에 발리에서 만난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비행기 캔슬됐다.” 누군가는 아직도 발리에서 강제휴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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