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후보자 때문에 조명받는 '예인정 침몰', 세월호 사고와 유사?

  • 등록 2014-06-17 오후 1:50:12

    수정 2014-06-17 오후 1:50:12

[이데일리 e뉴스 박종민 기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병역 기록이 논란을 낳으면서 과거 예인정 침몰 사건도 여론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군 기록상 1972년 7월부터 1975년 7월까지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이 가운데 복무기간 절반에 해당하는 1974년 1학기부터 1975년 1학기까지 서울대 대학원을 다닌 것으로 확인돼 그의 병역 사항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대학원 준비 기간이었던 1974년 2월은 예인정 침몰 사건이 발생했던 때였다. 해군에게는 비상사태나 다름없어서 장교였던 그의 부재는 지적을 받고 있다.

통영 앞바다에서 발생한 예인정 침몰 사고는 대형 선박 사고로 ‘통영 YTL 침몰 사고’라 명명됐던 참사다. 해군병 159기와 해경 11기 훈련병 총 311명이 충무공 전적지 견학과 충렬사 참배를 마치고 모함으로 귀환하던 중 일어났다.

△ 예인정 침몰 사건이 세월호 침몰 사건(사진)과 비교되고 있다. / 사진= SBS 제공


통영에 상륙했던 훈련병 일행은 함내 예인정(YTL)을 타고 모함인 LST-815(Landing Ship Tank) 북한함으로 이동하면서 급선회를 시도하다 균형을 잃고 전복됐다. 예인정 침몰 사고로 해군 159기 신병 103명, 해경 11기 50명, 실무요원 6명 등 총 159명이 순직했다.

예인정 침몰 사고는 대표적인 인재(人災)로 기억된다. 당시 예인정에는 탑승정원을 초과한 인원이 탔으며 정장의 미숙한 조함 지휘가 겹치면서 대형 사고로 발전했다. 사고 직후 정부는 해군 참모총장과 참모차장을 경질, 진해 해군 교육단장과 신병훈련소장을 직위 해제, 훈련소 대대장 등 인솔 책임자 3명을 구속하고 군법회의에 회부했다.

이 사고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도 맥락이 닮아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 역시 전형적인 인재에 속한다. 세월호는 사고 당시 과적한 상태였으며 침몰하는 과정에서 선장이 탑승객들을 구조하지 않고 먼저 탈출했다. 대형 인명피해를 낳은 것도, 책임자들이 대거 문책된 것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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