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겸의 일본in]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블록세트에 日열도 발끈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재현한 장난감 등장에
“이토 히로부미 암살 세트…조기 반일교육이냐”
분노 뒤엔 맥락 몰이해…램지어 파문도 마찬가지
내년 일본 고교과정서 근현대사 교육 강화
  • 등록 2021-03-01 오후 8:00:00

    수정 2021-03-01 오후 8:00:00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옥스포드사가 지난해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맞아 출시한 ‘독립군 하얼빈 의거’ 세트 (사진=옥스포드 홈페이지)
일본에서 때아닌 ‘롯데불매’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롯데 온라인 쇼핑몰인 롯데온에서 ‘이토 히로부미 암살장면 세트’를 팔고 있다는 글이 일본 트위터에 올라오면서다. 언급된 블록 장난감은 러시아 군인들과 ‘히로부미’라는 이름 붙인 양장 차림의 남성, 그리고 안중근 의사를 연상케 하는 ‘독립투사’ 블록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두고 일본 트위터 이용자들은 “조기 반일교육이냐”, ”외교 문제이고 국제 문제다. 외무성이 제대로 대응해야만 한다”는 등 날선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롯데에도 불똥이 튀었다. 분노한 일본 누리꾼들은 “이제 껌 필요 없다. 안녕 롯데”, “롯데에 항의하기 위해 (경쟁사인) 메이지제과 상품을 사자”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이 문제 삼은 장난감, 정확히는 한국 장난감 회사인 옥스포드가 지난해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기리는 ‘독립군 하얼빈 의거’ 블록이다. 당시 회사는 “장난감을 통해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며 제조 이유를 설명했다.

안중근 의사가 총을 들고 있다는 이유로 정치적이며 폭력적이라는 비판에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그 때의 의미에 더 집중해 달라”고 밝혔다. 일제에 대항해 주권을 찾기 위한 독립전쟁기였던 1910년 2월, 당시 사형수였던 안중근 의사가 “전쟁에서 군인이 적장을 살해한 행위는 정당하다”고 맞받아친 그 맥락을 말하는 것이다.

독립군 블록 구성품.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의사를 연상시키는 블록이 들어 있다(사진=옥스포드 홈페이지)
“테러리스트를 영웅 취급하는 나라라 반일에 눈이 멀었다”는 일본인들의 분노에는 그런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다. 세계사는 고등학교 필수 과목으로 하는 반면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일본 근현대사는 선택에 맡겨 온 탓이다. 일본의 군국주의로 점철된 패망의 역사를 정면직시하길 꺼리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있는 사실은 부정하고 없는 얘기는 만들어낸다. 과거 세탁에 있어서는 정부와 민간이 따로 없다. 일본 정부가 공공외교를 통해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이른바 ‘위안부 음모론’을 주장하고, 민간기업이 유명 대학에 막대한 돈을 들여 키워낸 친일파 학자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개발해내는 식이다. 그 결과 ‘미쓰비시 교수’ 직함을 단 마크 램지어가 “위안부 강제동원은 거짓”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세계적 명문 하버드대가 이를 학문의 자유로 보호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 (사진=연합뉴스)
맥락을 외면한 주장은 금방 밑천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램지어는 결국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근거 자료를 인용하면서는 입맛에 맞는 부분만 가져다 썼다는 점도 드러났다. 학문의 자유를 외치기 이전에 학문의 꼴을 갖추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맥락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2019년 일본의 경제보복 역시 공교롭게도 자충수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한일 양국 정부의 합의가 피해자 중심의 문제 해결이라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맥락을 애써 무시한 처사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반도체 업계의 일본산 플루오린화 수소(불화수소) 수입량은 전년보다 75% 줄어들었다. 대신 SK머터리얼즈 등 한국 기업이 자체 생산하는 데 성공했으며 피해는 고스란히 일본 기업으로 돌아갔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정부가 코로나 대응에 급급한 사이 한국에선 반도체 국산화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 수출규제로 일본은 연간 60억 엔씩 손실을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사진=AFP)
일본이 맥락을 외면하고 왜곡하려는 사이 3.1운동 102주년을 맞았다. 지금까지의 역사왜곡을 만회할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오는 2022년부터 일본 정부가 세계사와 일본사를 통합해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면서다. 일본의 선택지는 두 개다. 세계사의 맥락에서 침략의 역사를 직시하거나,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우익 주장을 더욱 침투시키거나다.

관방장관 시절인 2014년, “안중근은 우리나라의 초대 총리를 살해해 사형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말했던 스가 요시히데 총리이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스가 정권 출범 초기, 앞으로의 한일관계 전망을 묻자 “그간 스가의 과격 발언은 아베의 입 역할을 하느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총리로서의 행보는 우익과는 거리를 둘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친 한 일본계 한국인 정치학자의 답변이 떠올라서다. 내년 일본 고등학생들은 어떤 역사를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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