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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임현영 기자] 경남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서울과학기술대학교 2학년생 신모(21)씨. 학교 기숙사 추첨에 떨어졌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올해 3월부터 학교 근처에 사는 김씨 할머니 집에 6개월 간 머물기로 했기 때문이다. 월세는 관리비 포함해 25만원으로 주위 시세의 절반 수준이다. 오히려 4인실인데도 한 학기 130만원씩 지불해야 했던 학교 기숙사에 비해 훨씬 만족스러웠다.
어르신 남는 방에 대학생이 들어왔다. 서울 노원구에서 진행하는 ‘룸 쉐어링’ 얘기다. 주거 공간의 여유가 있는 68세 이상 노인들에게 신청을 받아 주거난을 겪고 있는 대학생을 연결하는 세대통합형 주거 공유 프로그램이다.
‘룸 쉐어링’은 주위의 비싼 임대료로 고통받고 있는 청년층에게 저렴한 방을 제공하고 동시에 노년층의 안정적인 자립을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구청 관계자는 “어르신과 학생들에게 골고루 만족도가 높아 대상 가구를 꾸준히 확장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6월 노원구가 프로그램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9%가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중앙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김연희(22)씨는 지난 학기부터 흑석동에 위치한 부분임대 아파트에 방을 얻었다. 그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 6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아파트와 거의 동일한 시설이라 만족한다”며 “집주인과 함께 살며 급히 필요한 살림 용품 같은 것도 빌릴 수 있는데다 하숙집과 달리 현관이 분리돼 있어 사생활이 보장된다는 점도 맘에 든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외국에서는 이미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공간을 나눠쓰는 공유주택이 보편적으로 자리잡았다. 독일의 경우 20년 넘게 진행돼온 ‘다세대 복지주택’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이는 한 건물 안에 노년층 가구와 젊은 세대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 베를린 마이젠벡에 위치한 다세대주택에는 약 29명이 함께 살고 있다. 거주민들의 나이대를 살펴보면 5세 아이부터 69세 노인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건물 내 공동 공간은 유치원, 청소년 클럽활동, 각종 모임 등을 위해 쓰인다. 다세대주택은 세대 간의 교류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찍이 고령화 사회가 찾아온 일본 역시 청년세대와 노년세대의 통합을 위해 힘써왔다. 일본 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시바우라 아일랜드’는 일반 분양아파트와 고량자 주택을 혼합해 공급한 사례다. 단지 내 위치한 노인주택 옆에는 유치원과 보육시설을 배치해 노인세대와 어린이와의 교류를 도왔다. 또 ‘아동고령자교류플라자’와 같은 공유 공간을 마련해 자연스레 세대 화합이 일어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서울시도 이와 유사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 6월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약에는 ‘세대 융합형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바 있다. 노년층이 소유한 주택을 서울시가 지원해 리모델링한 뒤 청년층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겠다는 방식이다. 노년층 소득 증대와 청년층 주거 비용 완화를 위한 취지다.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은 “사업성보다 ‘함께 산다’는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정책도 시급하지만 청년층과 노년층 등 세대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정책 마련도 필요하다. 민간 차원에서 시행하기 힘든 만큼 공공 차원에서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