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스 파동 남양, 오너일가 손 뗀다… 지분 처분 문제는 숙제(종합)

홍 회장, 첫 공식석상 사과 “구시대적 사고 틀 못 벗어나”
코로나 효능 발표에 식약처 즉각 개입… 기업 존폐 위기 느낀 듯
새 사장 선임 및 50% 넘는 지분 처리 등 숙제 남아
  • 등록 2021-05-04 오후 12:04:58

    수정 2021-05-04 오후 2:48:05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남양유업 회장직을 내려놨다. 회장으로 등극한 지 18년 만이다. ‘불가리스 사태’에 사과한 홍 회장은 두 아들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덧붙이며 흐느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최근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빚어진 논란과 관련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남양유업 본사 대강당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홍 회장은 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3층 대강당에서 진행한 ‘불가리스 사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난다”라고 밝혔다. 홍 회장이 직접 나서 국민에게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국민이 코로나 힘든 시기에 당사의 불가리스 관련 논란으로 실망하시고 분노했을 국민과 현장에서 고통받을 직원, 대리점주 및 낙농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유가공 기업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제가 회사에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오다보니 구시대적인 사고에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비자 여러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거 같다”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중구 청파로에서 ‘코로나 시대의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왼쪽부터) 이연희 전(前) 한국미생물학회장, 김경순 한국의과학연구원 마이크로바이옴 센터장, 박종수항바이러스 면역연구소 소장, 백순영 전 가톨릭의대 미생물학 바이러스학 교수가 패널 토론을 하고 있다.(사진=김무연 기자)


18년 회장직도 내놓게 만든 불가리스 파동

지난달 남양유업은 13일 서울 중림동 LW컨벤션에서 ‘코로나19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박종수 남양유업 항바이러스 면역연구소 소장은 불가리스가 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인 코로나19 억제 효과 연구에서 77.8% 저감 효과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다만 인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아닌 세포 실험이란 명확한 한계가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부족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해 지난달 30일 압수수색도 받았다. 식품표시광고법 제8조는 ‘질병의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식약처는 남양유업 세종공장 관할 지자체인 세종시에 영업정지 2개월도 요청했다.

불가리스 사태로 피해를 입은 대리점주들도 단체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전국대리점주협회는 지난달 29일 이광범 대표 퇴진과 대리점 정상화를 위한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협회는 남양유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걍우 전국 모든 대리점이 주문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본사 측에 전달했다.

이에 지난 3일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는 이번 불가리스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내용을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전달했다. 그는 “연구성과 발표에서 의도와 달리 발생한 오해와 혼란으로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직원과 대리점 등 남양 가족들에게 커다란 고통과 실망을 드렸다”라면서도 “다만 유의미한 과학적 연구성과를 알리는 과정에서 오해와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에는 홍원식 회장의 장남인 홍진석 기획마케팅총괄본부장 상무가 보직 해임됐다. 홍 상무는 불가리스 사태 외에도 회사돈 유용 논란이 불거진 상황이다. 남양유업은 내부적으로 사실확인을 진행하고 있지만 논란을 일으킨 것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보직해임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1월 7일 집행유예 기간 중 또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씨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공식석상서 첫 사과… 기업 존폐 위기 느낀 듯

남양유업은 지난 2013년 지역 대리점에 물건을 밀어내기 논란이 퍼지면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당시 남양유업은 사회적으로 대두되던 ‘갑질’의 전형적인 기업으로 낙인 찍혀 불매운동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홍 회장은 직접 대중에 나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후 크고 작은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지만 홍 회장은 공식석상에 나서지 않았다. 2019년 외조카 황하나 씨의 마약 범죄 혐의 당시에도 남양유업은 홍 회장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대국민 사과를 했을 뿐 홍 회장이 직접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지난해 경쟁사를 비방한 댓글을 조직적으로 단 사건에도 홍 회장이 직접 나서는 일은 없었다.

홍 회장은 “2013년 회사의 밀어내기 파동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저의 외조카 황하나 사건, 지난해 발생한 온라인 댓글 파동 등 회장으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과드리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많이 부족했다”라고 고개를 떨궜다.

홍 회장이 전면에 나서 고개를 숙인 것은 물론 본인의 회장직과 두 아들의 승계를 모두 포기한다고 발표한 것은 그만큼 홍 회장 일가도 현 상황을 엄중히 보고 있단 방증이다. 이미 수 차례 논란으로 기업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오너 일가가 책임을 회피하면 기업 존속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정부는 물론 국회와 기업, 시민 사회까지 모두 코로나19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자사 제품이 코로나19에 효능이 있다고 발표한 것은 사실상 정부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평가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은 심포지엄 당일 남양유업의 발표가 걱정스럽다는 의견을 냈고, 식약처도 즉각적으로 남양유업을 고발조치 했다.

◇ 새 수장 선임, 지분 정리 등 숙제 산적


홍 회장은 입장문 말미에 “모든 잘못은 저에게서 비롯되었으니 저의 사퇴를 계기로 지금까지 좋은 제품으로 국민의 사랑에 보답하려 묵묵히 노력해온 남양유업 가족들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거두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라며 “살을 깎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남양을 만들어 갈 우리 직원들을 다시 한번 믿어주시고 성원해 주시기 바란다”라고 했다.

다만 남양유업이 지금껏 문제의 중심에 서 있던 홍 회장 일가와 결별하고 진정한 쇄신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산적한 문제가 적지 않다. 공석이 된 사장 자리에 기업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을 선임하고 홍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남양유업 지분 정리하지 않는 한 홍 회장의 사과는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우선 지난 3일 사임한 이광범 대표를 대신해 어떤 인물을 대표로 선임할 지가 관건이다. 이 대표는 조직 안팎으로 홍 회장의 복심으로 평가받아 왔다. 오너 일가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식품업계에서 잔뼈가 굵고 떨어진 기업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인재를 물색해야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남양유업의 기업 이미지를 고려할 때 새 인선엔 난항이 예상된다.

홍 회장 일가가 가진 지분 처분 문제도 남아 있다. 남양유업 지분은 지난해 말 기준 홍 회장이 51.68%를 보유한 가운데 홍 회장의 배우자인 이운경 씨가 0.89%, 동생 홍명식 씨 0.45%, 손자이자 홍 상무의 아들인 홍승의 군이 0.06%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기획마케팅총괄본부장 자리에서 보직해임 당한 큰 아들 홍진석 상무와 차남인 홍범석 외식사업본부장은 보유 지분이 없다.

홍 회장이 두 아들에게 기업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회장 일가가 보유한 53.08% 지분은 매각이나 증여를 통해 처분을 해야만 한다. 만약 지분을 일가에게 양도한 채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일절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꼼수’를 부린다면 외려 더 큰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다.

경영형 사모투자펀드(PEF) 운영사에 매각한다하더라도 의구심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다. 사모펀드 특성상 주주를 특정하기 어려운데 오너 가의 출자금이 들어간 펀드라면 사실상 남양유업의 전반 사항은 오너 가의 의중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남양유업은 새로운 사장 선임 및 지분 처분 방식 등에 대해 공식적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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