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은 지난해 11월 동부하이텍, 동부메탈, 동부제철 인천공장·당진항만, 동부발전당진 지분, 동부익스프레스, 동부팜한농 유휴부지 등을 매각해 3조 원 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내용의 자구계획안을 채권단에 제시했다.
이 자구 계획안을 근거로 산업은행을 주축으로 하는 채권단으로부터 기존 부채연장 등을 포함해 모두 1조 원 가량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당시 동부가 내놓은 매물 가운데 동부발전당진 등 알짜배기가 상당수 포함돼 있어 채권단은 이구동성으로 동부의 자구계획안이 실현성이 높다고 호평했다. 이때 동부의 자구계획안 추진 권한은 채권단이 동부로부터 위임받았다.
하지만 올들어 동부에 대한 이런 좋은 평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채권단은 “동부가 자구계획안을 내놓은 지 반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단 한건도 매각을 성사시키지 못했다”며 동부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고 강도높게 비판을 하고 있다.
동부그룹은 ‘칼자루’를 산업은행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단에 대한 불만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내심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산업은행에 대한 서운함과 불만이 커져가는 형국이다. 특히 동부는 대다수 기업들이 인수·합병(M&A)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경기불황 국면에서 채권단이 매각작업의 속도가 늦다고 닥달하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김준기(사진) 동부그룹 회장은 이달 초 열린 그룹 임원회의에서 “자구계획안이 (우리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뤄지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안팎에서 동부의 사업구조조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지만 흔들리지 말고 본업에 정진하라”고 경영진들에게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과 동부그룹의 신경전은 다음 달 초 최대 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포스코가 이달 초 시작한 패키지(동부제철 인천공장 + 동부발전당진)기업실사가 빠르면 이달 말 마무리되면 5월 초 가격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1조4000억 원은 업계가 추정하고 있는 패키지 매물을 분리 매각할 때 받을 수 있는 최저금액이다. 이때문에 이 가격 이하로 매도가 성사되거나 포스코 인수가 불발되면 동부그룹의 산업은행에 대한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