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했던 흥환간이해수욕장에 도착하니 텐트를 칠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한 동이면 어찌어찌 해보겠지만 알파인 텐트 네 동을 치는 건 무리이다 싶어 기억해 두었던 폐교를 찾아갔다. 폐교는 시즌 중에 캠핑장으로 이용되는 사유지로 이즈음은 영업하지 않았다. 점방에 들러 물건을 사면서 폐교 관리하시는 분을 수소문하니 마침 점방 사장님이신 당신이 그곳의 관리자란다.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리며 폐교 운동장에서의 야영 여부를 부탁드리니 동네 형님이시라는 주인과 통화 후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야영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장군바위를 지나면서부터 해안에는 모감주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 해안가 사면에 자라는 모감주나무 군락지는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크기이며, 천연기념물 제371호로 지정된 곳이다. 나무 전체가 노랗게 물든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의 노란 꽃이 피지만 아직 꽃을 보기에는 시기가 일렀다. 바다는 잔잔했고, 바람도 없었다. 다만 미세먼지가 심해 이곳의 맑은 하늘과 바다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트래킹을 하는 일정 내내 비가 온다는 기상청 예보에 비가 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스러울 수가 없다.
소박한 어촌 마을과 바닷가를 오가며 걷는 길은 내내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걷느라 멀미를 느끼고 지루할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생전 처음 보는 바닷가 기암절벽을 만나면 ‘우와~’ 소리가 저절로 났고, 익숙한 풍경의 바다를 만나면 이제껏 다녀온 길들을 비교하며 서로 얘기하기 바빴다.
바다 절벽은 해국 천지다. 겨우내 줄기가 얼어붙고 말랐지만 뿌리는 절벽에 착 붙어 그 생명력을 이어내며 보랏빛 꽃을 피워내는 시절을 기다리는 중이다. 보리수나무는 또 어떠한가. 척박한 바다 절벽에 뻣뻣하기 이를 데 없이 덩굴처럼 얼기설기 자라면서 아직 희끗희끗한 보리수가 한 움큼씩 열려 붉으스름 하게 익으면 나올 그 떨떠름한 맛을 생각하니 입안에 침이 고이며 목구멍으로 저절로 꼴깍 넘어갔다.
점심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을 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새 식당이 나와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다. 회덮밥을 주문하니 자연산 회를 썰어 풍성하게 고명으로 올려주고, 생물 아귀를 넣고 끓인 아귀탕을 서비스로 내어주시니 걸으면서 이런 입 호사도 없다.
길은 그렇게 자연과 어촌 마을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주며 드디어 호미곶 해맞이광장까지 우리를 이끈다. 어제 오늘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보다 이곳에서 맞닥뜨린 사람은 몇 십 배나 많았다. 어제보다 제법 험한 길을 더 길게 걸은 데다 사람들까지 더하니 시끄러운 소음을 만난 듯 순간 정신이 까무룩 해졌다. 생각해 놓았던 숙영지는 더 가야하는데 놓쳐버린 정신줄은 어디쯤인지 돌아올 생각을 안 하니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