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회의 이미지업]행복은 가진 순이 아니잖아요

한국은 모드 변환 중
  • 등록 2012-09-03 오후 5:53:48

    수정 2012-09-03 오후 5:53:48

[이데일리 하민회 칼럼니스트] “모처럼 비가 와서 날이 참 좋지요?”

“좋은 날이요? 천둥번개가 쳐도 내 주머니에 돈 들어오면 그 날이 좋은 날이지요.”

더 없이 솔직한 택시기사의 대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침없이 사 마시던 커피 한 잔 값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요즘, 지속되는 불경기가 슬그머니 두려워지는 건 얇아진 주머니보다 자꾸 움츠러들고 왠지 덜 행복하게 느껴지기 때문 아닐까?

며칠 전, 명동성당 평화갤러리에서는 사진전 ‘꿈꾸는 카메라-라오스, 스리랑카 전’이 열렸다. 지구촌 소외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선물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촬영하면서 자기를 들여다보고 꿈을 발견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이 프로젝트의 전시사진들에는 하나 같이 ‘가난하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은’ 청소년들이 찍혀 있었다. 남루한 입성과 보잘것 없는 환경에도 해맑게 웃는 그들의 눈동자에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 했다.

행복지수 세계 2위인 베트남에서는 퇴근길에 동료들과 맥주 한잔 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게 꼽히고, 소와 벤츠와 자전거 인력거가 마구 엉겨 다니는 인도에서는 행복하다고 믿는 순간 행복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구걸하는 이들조차 당당하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인은 행복불감증을 앓고 있다. 여전히 더 많이 가지고 더 빨리 성공하기 위해 달리고 있어서일까? 좁은 땅에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팽팽한 긴장감이 일상적인 스트레스가 된 우리는 행복하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어쩌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 달 째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는 백화점에서 유독 두 자릿수 성장을 이룬 품목이 있으니 바로 고급 식기다. 주부들이 외식을 줄이는 대신 알록달록한 예쁜 그릇이나 주방용품으로 불황에 따르는 우울함을 해소하고 삶을 충전하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혹자는 ‘은접시 효과’라 불리는 이 현상을 불황기에 값비싼 물건을 사지 못하는 여성들이 작고 효과가 큰 립스틱으로 소비욕을 해소하는 ‘립스틱 효과’와 같은 것으로 해석한다. 그렇지만 나의 견해는 좀 다르다.

은접시 효과야 말로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는 한 징후가 아닐까? 집에서 만든 음식을 고운 그릇에 담아 흐뭇해하며 먹는 일. 열심히 살고 있는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보상이자 감사다. 자기 일상의 매 순간을 보다 귀하게 여기고 보다 행복해지려는 시도의 일종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무조건 명품을 고집하지 않는다. 실리적이고 개성 있는 자기만의 중저가 브랜드를 오히려 선호한다. 가족을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과자를 굽거나 요리를 배우고,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골프 대신 친구들과 동료들과 등산을 가거나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늘고 있다. 서점가에서는 자신을 성찰하고 위로하며 내면을 강화하는 류의 책들의 판매가 처세서를 앞지르고 있다.

분명 우리사회는 모드 전환 중이다. 행복해지는 법을 터득해가며 바람직하게 바뀌고 있다. 남과의 비교와 경쟁으로부터 시선을 자신에게 맞추고, 한 번 사는 생을 보다 아기자기하게 재미있게 살고자 하고 있다. 물질적인 것이 행복한 삶의 충분조건도, 유일한 대안도 아니라는 인식을 통해 진정으로 행복은 가진 순이 아님을 깨달아 가는 중이다.

“ 비 온 뒤라 날이 좋네요” 라는 말에

“ 매일이 좋은 날이지요” 하는 씩씩한 대답을 들을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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