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기도 부천시 이마트의 신선식품 매장 앞에서 만난 박상범(57·경기 시흥) 씨는 최근 일어난 ‘살충제 계란’ 사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씨의 카트에는 계란 대신 샀다는 메추리알 40개가 담겨있었다. 그는 “기업은 괜찮다고 다시 계란을 팔고 정부는 앞으로 검사 잘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늦은 것 아니냐”며 “막말로 누구 하나 아프지 않으면 흐지부지 잊힐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보상대책 없는 정부·제조사, 집단소송제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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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제란 기업이나 정부가 부당행위로 인한 특정 피해자가 소송에서 이기면 나머지 피해자도 모두 배상받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대부분 사건에 대해 집단소송(Class Action)을 허용하고 있다. 즉, 소비자 1명만 승소하면 불법을 저지른 정부나 기업은 최대 수백만 배에 이르는 보상금을 토해내야 한다. 소비자 권리를 높일 수 있고 탈법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집단소송제 도입을 공약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집단소송제가 국내에 있었다면, ‘살충제 계란’ 사태의 파장이 더 커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률사무소 새빛의 박지혁 변호사는 “정부가 국민의 건강권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집단소송제가 있었다면, 소비자들의 소송이 빗발쳤을 수 있다”며 “현행법으로는 피해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과하게 전가돼 있기에 쉽게 (소송에) 나서지 못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집단소송제 없이도) 폭스바겐 소송처럼 소비자들이 개별적으로 모여 소송을 진행할 수는 있지만, 개개인별로 처한 상황과 피해규모, 입증의 난이도가 다른 것이 문제”라며 “특히 피해규모를 구체적으로 산출하기가 어렵고 정부가 살충제 계란 사태를 방조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유통기업도 간접적 가해자...구제방안 마련해야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소비자들은 가습기 살균제와 살충제 계란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가 꼭 문제가 돼야 대책을 내놓는다는 불신을 뿌리 깊게 가지게 됐다”며 “정부는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모니터링을 강화하기에 앞서 사고가 발생했을 시 소비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 및 구제방안을 마련해 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유통기업 역시 이번 사태의 역시 간접적인 가해자라며 “식품을 제조하고 유통하는 기업은 안전한 먹거리를 팔 법적인 의무는 없다. 다만 이는 소비자에 대한 하나의 책무다. 소비자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향후 잔류농약검사의 강화 등 관련 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