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쌍둥이 한 풀어야"…씻김굿으로 수억 챙긴 무속인 무죄

5년간 133차례 씻김굿 해주고 5억 6000만원 챙긴 사기 혐의
쌍둥이 빙의한 척 피해자에게 문자 보내기도
法, "무속 행위는 마음의 위안이 목적…사기 아냐"
  • 등록 2017-08-30 오후 3:54:16

    수정 2017-08-30 오후 4:15:02

서울 종로구 거리에 사주·궁합·타로 등 점집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이모(55·여)씨는 지난 2011년 1월 서울 등촌동의 한 점집을 찾았다. 화공약품 수입·판매업체를 운영 중인 남편 사업이 잘 풀리지 않던 차에 연초 운세도 알아볼 겸 해서다. 당시 자식 문제 등 여러 일이 겹치면서 한창 고민이 많을 때였다.

이씨는 무속인 강모(45·여)씨에게 ‘자식들이 잘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남편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등 여러 고민거리들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놨다. 약 30년 전 쌍둥이를 낙태한 사실까지도 강씨에게 고백했다.

낙태 얘기를 들은 강씨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굿을 하지 않으면 쌍둥이의 한(恨)때문에 지금 자식들에게 천벌이 내리고 결국 그 자식들이 무속인이 돼! 주기적으로 굿을 해 쌍둥이의 한을 풀어줘야 해!”.

‘태어나지도 못하고 눈 감아버린 불쌍한 내 아이들’. 지난 30여 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던 이씨는 강씨 말대로 원혼을 위로하는 ‘씻김굿’을 주기적으로 하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우선 착수금조로 400만원을 건넸다.

이후 쌍둥이에겐 ‘승억이’와 ‘승옥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씻김굿을 하고 나선 이씨의 휴대폰으로 쌍둥이에게 문자도 왔다. “엄마 마음 알앙 속상해하지망. 엄마 사랑해.” 이씨의 마음은 벅차 올랐다. ‘뱃속에서 죽은 아이들이지만 아직 나를 사랑하는구나’.

가끔은 밥을 잘 챙겨먹는다는 안부 인사도 전했다. “우이 엄망~~ 히히히 꼬기 승억이 승옥이 마이마이먹어쪄요.” 크리스마스에는 인사 문자도 왔다. “엄망 메리크리스마스에용.”

남들이 보면 ‘정신 나갔다’ 생각했을 테지만, 이씨는 문자를 받을 때마다 마치 죽은 쌍둥이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씨는 마음을 위로받고 싶을 때면 언제나 강씨를 찾았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15년 말까지 5년에 걸쳐 씻김굿을 총 133차례나 받았다.

어느 날 계좌 입출금 내역을 확인하던 이씨는 씻김굿에 5억 6000만원이나 썼다는 걸 알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 엎질러진 물이었다.

검찰은 지난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사기)로 강씨를 재판에 넘겼다.

통상 씻김굿은 1~3회 하는 게 보통인데 많게는 한 달에 3차례씩, 수 년에 걸쳐 100여 차례나 한 데다 쌍둥이에 빙의된 척 문자까지 보낸 것은 이씨를 속여 이득을 취하려는 고의가 있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검찰은 굿값으로 치른 5억여원을 입증하기 위해 이씨의 계좌 입출금 내역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재판장 심형섭)는 지난 25일 “무속 행위는 그 과정에 참여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게 목적이고 요청자가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요청자를 속였다고 볼 순 없다”며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이씨가 남편과의 문제나 자녀들 문제로 힘든 상황에서 무속의 힘에 의지해 안정을 얻으려는 생각에서 강씨가 속이지 않았는데도 굿에 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밝혔다.

아울러 인출한 돈 일부가 다른 용도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어 계좌 입출금 내역으로는 피해 금액을 정확히 산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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