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미늄 담합 피해자` 현대차는 왜 입찰제도를 바꿨을까

현대차 알루미늄 합금 납품 8社, 10년간 담합 200억 과징금
형사처벌에도 담합 지속…공정위, 현대차와 입찰제도 개선
운송비 별도 책정에 15% 물량 보장…낙찰포기권도 공식화
현대차 "공정한 경쟁환경과 상생협력 위해 노력하겠다"
  • 등록 2021-12-08 오후 6:10:03

    수정 2021-12-08 오후 6:10:03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알루미늄 합금 공급업체들의 장기 담합 피해자인 현대차(005380)가 입찰제도를 개선했다. 낙찰가에 포함된 운송비를 지역에 따라 별도 책정하는 등 종전보다 공급업체에 유리하게 변경했다. 담합 피해자인 현대차가 오히려 입찰제도를 개선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소 알루미늄 합금 업체…檢 기소 후에도 ‘담합

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2011~2021년까지 무려 10년 넘게 현대차가 실시한 알루미늄 합금제품 구매입찰에서 투찰가격 등을 담합한 알테크노메탈 등 8개사에 약 20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가장 많은 과징금이 부과된 알테크노메탈에 38억원, 나머지 7개사에도 2억~35억원 규모의 과징금이 각각 부과됐다. 2020년 기준 8개사 평균 영업이익이 55억원 안팎인 이들 기업엔 과징금이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발주처인 현대차가 피해를 입은 흔한 담합사건이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전경(사진 = 이데일리DB)


현대차는 이번 사건 입찰에서 이른바 `일물일가제`로 불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최저가를 써낸 회사의 입찰가에 다른 낙찰사의 공급가도 맞추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3개사를 뽑는 입찰에서 A사가 가장 낮은 100원의 입찰가를 써내 낙찰을 받으면, 이보다 더 높은 110원을 써낸 B사와 120원을 쓴 C사는 3순위 안에 들어 납품을 해도 공급가는 100원에 맞춰야 한다. 거칠게 생각하면 자금난으로 납품이 급한 회사가 이윤을 모두 포기하고 최저가를 써내 낙찰받으면 다른 회사도 울며 겨자 먹기로 비합리적인 최저가에 납품해야 하는 셈이다.

사건 담합이 장기간 유지된 데에는 물류비용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 화물처럼 쉽게 운송 가능한 알루미늄 잉곳(바 형태의 고체)과 달리 고온 액체상태로 납품하는 알루미늄 용탕은 거리에 따라 운송비 차이가 크다. 같은 납품가라고 해도 짧은 거리를 운송하는 현대차 울산공장 인근 울산 납품업체와 긴 거리를 운송해야 하는 기아 화성공장 인근 충남 납품업체 사이의 비용 차이가 컸다. 하지만 입찰은 운송비를 고려하지 않고 울산 및 화성공장 납품업체 구분 없이 진행됐다. 이에 충남 납품업체들은 담합 유혹이 훨씬 컸을 것으로 보인다.

납품을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공정위 관계자는 “업체들이 납품가격이 낮게 결정된 경우에도 추후 입찰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납품 포기를 요청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납품업체는 공장을 계속 가동하지 못하면 용해로(고로)가 파손될 우려, 선(先)주문한 원재료(알루미늄 부스러기), 고정 인건비 등에 대한 부담도 있다.

실제 이들은 입찰담합을 하다가 2017년 4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현 공정거래조사부)로부터 7개사 회장과 대표이사 등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음에도 2년 만인 2019년 9월부터 다시 담합을 했다. 형사처벌이라는 강력한 제재에도 바로 담합이 재개된 흔치 않은 사례다. 사실상 형사처벌도 효과가 없던 셈이다.

입찰제도 개선 유도한 공정위…현대차도 적극 수용

공정위는 이번 담합이 법 위반이 명백하지만 현대차의 입찰제도에도 미비점이 있다고 판단, 협력업체 및 현대차와 협의하며 제도를 개선했다.

가장 큰 변화는 운송비의 별도 책정이다. 종전에는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를 운반하는 울산 납품업체와 긴 거리를 운송하는 충남 납품업체의 운송비 차등 없이 모두 입찰단가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내년 공급분부터는 운반비를 제외한 납품단가로 입찰한 후 낙찰가와 별도로 운송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긴 거리를 운송하는 충남 납품업체가 울산 납품업체와 대등하게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또 현대차가 납품업체들의 안정적인 공장 운영을 위해 최저 15% 납품 물량을 보장키로 한 것도 달라진 부분이다. 종전에는 낙찰순위에 따라 물량의 10% 이하를 납품받는 사례도 있었는데, 이 경우 물량이 너무 적어 수익을 내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상징적인 의미가 크긴 하지만 현대차가 낙찰사의 납품 포기권을 1개사에 한해 공식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포함했다. 달라진 제도는 내년 납품분부터 바로 적용된다.

(자료 = 공정위)


다만 일물일가제 입찰방식 자체가 달라지진 못했다. 알루미늄 합금제품은 원재료(알루미늄 부스러기)의 가격 비중이 90%로 절대적으로 높은 데다 회사별로 기술력 차이가 없어 가격을 크게 차등 지급하기가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향후 현대차와 협력업체 간에 협의할 수 있는 부분을 계속 논의해 입찰제도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담합 사례가 발생해 유감”이라면서도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과 상생협력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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