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장애물' 비판받았던 워킹그룹 없앴지만…北 "꿈보다 해몽"

트럼프 시대 한-미 정책 협의기구로 개설됐지만
'오히려 발목잡는다' 비판에 직면
국장급 정책대화…'알갱이는 안 바꼈다' 지적도
北태도도 미지수…김여정 "잘못된 기대"
  • 등록 2021-06-22 오후 5:32:35

    수정 2021-06-22 오후 8:59:31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대북정책 한·미 실무급 협의체 ‘한·미 워킹그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출범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남북 모두 불만을 가지고 있는 한·미 워킹그룹을 공식 종료하고 남북협력사업에 대한 미국 측의 지지를 보여주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킹그룹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한국정부가 독자적으로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북한 역시 당장 화해분위기를 조성하기보다는 향후 있을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해 팽팽한 신경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22일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장관실을 찾은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와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 제공)
◇소통기구로 개설됐지만 ‘발목잡는다’ 비판 직면


외교부는 지난 21일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서 워킹그룹의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이를 종료하는 방향으로 검토키로 했다고 합의했다고 22일 밝혔다.

워킹그룹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군사분야 합의 체결을 계기로 그해 11월 20일 만들어졌다. 남북이 다양한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미국 대북특별대표로 임명된 스티븐 비건 대표 역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처마다 입장이 달라 협의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북 정책과 관련된 한·미 양국의 모든 부처의 실무진들을 모아놓은 것이 워킹그룹이다.

그간 외교부에서는 워킹그룹 덕분에 미국과 제재 면제에 대한 원스톱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순기능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작 남북협력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워킹그룹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불만이 나왔다. 워킹그룹이 남북협력사업의 제재 면제 여부를 너무 엄격하게 따지거나 결국 승인이 나더라도 시간이 지연되며 사업이 무산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다.

남한이 북한에 타미플루 인도적 지원에 합의했지만 워킹그룹에서 이를 운반할 트럭이 제재를 위반하는 것이 아닌지 논의하다가 결국 북한이 이를 거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방북 신청도 2019년에는 5번이나 거부당했다.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행사에 워킹그룹의 승인이 늦어지며 취재진이 노트북을 가져가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여권 인사와 진보단체 사이에서 워킹그룹이 남북 관계 개선을 막은 옥상옥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대북정책의 주무부처인 통일부 역시 보이콧까지 할 정도로 불만이 컸다.

북한에서도 워킹그룹에 대해서는 날 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작년 6월 워킹그룹에 대해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이 그 예다.

국장급 정책대화 신설되지만 실효성엔 의문

이번에 한·미 양국이 워킹그룹 폐지를 검토키로 한 것은 이같은 기류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워킹그룹 폐지 배경에 대해 “워킹그룹이 한·미 간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의견 조율 및 협의 기제로서 기능하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남북관계 개선의 장애물 등 일부 비판을 받았던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간 운용의 묘를 살려 워킹그룹을 존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외교부 입장과는 결을 달리한다.

남북협력사업의 장애물로 꼽혔던 워킹그룹이 사라졌지만 남북 관계가 곧장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워킹그룹이 사라졌다고 한국이 독자적으로 남북협력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요미우리는 한·미·일 외교소식통을 통해 지난달 21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관련 실무 조율 단계에서 한국이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제교류 사업의 대북 제재 인정을 요구했지만 미국이 거부했다고 밝혔다. 한·미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대북 접근법이 완전히 일치되도록 조율해나가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외교부는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 역시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가칭 ‘한·미 국장급 정책대화’가 (워킹그룹의) 대안이 될 것”이라며 “여기서 국장급은 우리의 평화외교단장이나 북핵외교기획단장을 말하고, 이들의 카운터파트는 부차관보급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제 이들이 여기서 제재와 관여 등을 다 포함해서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도 워킹그룹 실무 책임자는 임갑수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과 정 박 미국 동아태부차관보 겸 대북특별부대표가 맡고 있다. 워킹그룹의 의제 역시 특별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비핵화와 남북협력, 대북제재 문제 등 대북정책에 관련된 의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실무협의라는 알갱이는 유지된 채 껍데기만 바뀌는 셈이다.

오히려 과거 워킹그룹의 경우 국무부, 재무부, 상무부, 의회 등 포괄적으로 중첩된 대북제재를 범부처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국장급 협의가 워킹그룹의 효율성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의 목소리도 나온다.

통일부는 미국 국무부와 별도의 소통창구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 국무부 차원의 고위급·실무 협의를 ‘공식화’ 또는 ‘정례화’할 지를 언급할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사진=연합)
美에 다시 공 넘긴 北

남북협력사업의 가장 핵심 키를 쥐고 있는 북한의 태도도 여전히 강경하다. 김여정 부부장은 이날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를 조선중앙통신에 기재했다. 그는 “조선속담에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은 아마도 스스로를 위안하는 쪽으로 해몽을 하고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미 워킹그룹 폐지에 대한 별도 언급은 없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대화와 대결’ 발언을 “흥미로운 신호”(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라고 평가하고 “언제 어디서든 조건없이 만나자”(성 김 대북특별대표)라고 제안한 미측의 말을 맞받아치며 공을 다시 미국에 넘긴 셈이다.

이에 대해 양무진 북한대학교 대학원 교수는 “김 총비서의 대화준비론에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그냥 흥미롭다 정도의 가벼운 반응에 대한 반발이 담겨 있다”며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제의를 곧장 거부한 것이 아니라 김 대표가 한국 체류 중임을 감안해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진정성이 있고 보다 구체적인 명분을 달라는 메시지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3일 학계, 전직 관료 등 시민사회 인사들과 만난 후 인도네시아로 떠난다. 박 부대표를 비롯한 실무단 팀은 하루 더 한국에 머물며 워킹그룹 후속 조치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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