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촉구한 ‘정치검사’ 척결과 함께 현 정부의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 출신과 검찰 내 소장파를 대거 수혈하는 인적쇄신을 통해 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는 해석이다.
고검장·검사장 승진자 30% 호남 출신
법무부는 27일 고검장급 5명, 검사장급 12명을 승진 임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실시했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법무연수원장과 서울고검장에는 각각 김오수(54·사법연수원 20기) 서울북부지검장과 조은석(52·19기)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임명됐다. 황철규(53·19기) 대구고검장과 박정식(56·20기) 부산고검장, 김호철(50·20기) 광주고검장 등 신임 고검장 3명도 승진 대상자에 포함됐다.
이 가운데 김 원장(전남 영광)과 조 고검장(전남 장성) 등 2명이 호남 출신이다. 이날 검사장으로 승진한 고기영(52·23기)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과 이성윤(55·23기) 대검 형사부장, 송삼현(55·23기) 대검 공판송무부장까지 포함하면 전체 승진자 17명의 30%에 해당하는 5명이 호남 출신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간 소외됐던 호남 출신이 전진배치된 양상이다. 문재인 정부 지지도가 높은 호남을 배려한 차원으로 읽힌다. 이밖에 대구·경북(3명)과 부산·경남(2명) 등 영남 출신이 5명, 서울·경기 6명, 충남 1명 등이다.
유상범·김기동 검사장 사실상 좌천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정치 줄대기를 통해 혜택을 누린 일부 정치 검찰이 있다면 통렬히 반성하고 확실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강도 높은 인적쇄신을 요구했다.
이를 감안한 듯 이른바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됐던 일부 고위간부가 좌천 성격이 짙은 인사 조치를 당했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재직할 때 ‘정윤회 문건’ 수사를 지휘했던 유상범(51·21기) 광주고검 차장검사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됐다. 창원지검장에서 수사지휘권이 없는 광주고검으로 옮긴 지 한 달 만에 일선에서 배제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8일에는 윤갑근·정점식·김진모·전현준 검사장이 일제히 무보직 상태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나기도 했다. 이들은 즉시 사의를 표명하고 옷을 벗었다.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을 맡고 있던 김기동(53·21기) 검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전보 조치됐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폭로했던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지난해 말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차은택씨에게 법률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이 김기동 검사장이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소개해줬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2014년 민주당 의원들에게 국정원 여직원 감금죄를 적용해 기소한 사건을 지휘한 윤웅걸(51·21기) 대검 기획조정부장도 제주지검장으로 발령이 났다. 당시 기소됐던 이종걸, 강기정 의원 등은 1심에서 모두 무죄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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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검사장 승진자 12명 중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동기인 23기가 9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22기는 3명이었다.
검사장 막내 기수가 된 23기들은 법무부(기획조정실장·범죄예방정책국장)와 대검(형사부장·강력부장·공판송무부장·과학수사부장)으로 대거 진출했다.
이같은 결과는 예고된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 기소한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깜짝 발탁하며 인적쇄신 의지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23기가 검찰에서도 최대·최강 수사력을 보유한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법무부와 대검 요직까지 꿰차면서 차세대 주류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새로운 인재들을 발탁해 검찰 지휘부를 개편하고 분위기를 일신했다”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