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국제유가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들의 산유량 감축 합의 연장에도 불구하고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유가가 미국 원유 재고 증가에 하루만에 5% 이상 폭락했다. 중동에서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예상할 수 없는 전개를 보이고 있는 만큼 유가 전망 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7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2.47달러, 5.1% 추락한 배럴당 45.72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거래소의 브렌트유 가격도 4.1%, 2.06달러 추락한 배럴당 48.06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이후 전자거래에서는 WTI와 브렌트유 가격이 각각 0.6% 안팎으로 반등하곤 있지만 여전히 지난 3월 이후 근 석 달여만에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원유 재고가 늘어난 것은 미국내 원유 생산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원유 수입물량이 늘어난 이유도 한몫하고 있다. 미국 WTI와 북해산 브렌트유 사이의 가격 차이(=스프레드)는 지난주 1.99달러까지 줄자 미국 석유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진 자국산 원유 소비를 줄이는 대신 상대적으로 싸 보이는 브렌트유를 비롯한 외국산 원유 수입을 늘렸다. 실제 지난주 미국의 해외 원유 수입물량은 하루 평균 35만6000배럴 늘어났고 수출은 74만6000배럴 줄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산유량을 줄이고 수출량도 줄였지만 이라크는 원유 수출을 더 늘리고 있다. 이라크로부터의 미국 원유 수입은 지난주 하루 평균 114만배럴까지 급증해 지난 2012년 이후 5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우디로부터의 원유 수입이 무려 55%나 줄었지만 이라크산 원유 수입 증가가 이를 대체했다. OPEC 산유국 가운데 유일하게 리비아도 산유량을 늘리고 있다. 하루 평균 100만배럴까지 원유 수출을 늘리고 있는데 이는 OPEC 감산량의 3분의1 수준에 이른다.
필 스트레이블 RJO퓨처스 선임 스트래티지스트는 “원유 재고 보고서가 원유시장에 치명타를 가했다”며 “이렇게 원유 재고가 늘어난다면 시장 균형을 다시 바로 잡기는 어려울 것이며 시장 안팎에서는 유가가 다시 20달러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얘기들까지 나돌았다”고 전했다.
원유시장 컨설팅업체인 리포우오일어소시에이츠를 이끄는 앤디 리포우 대표는 “원유시장은 높아진 재고물량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다”며 “글로벌 원유 재고가 언제쯤 줄어들 것인지를 지켜보면서 시장은 의미있는 반등을 보이지 못한 채 관망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이럴 경우 주요 산유국들은 감산폭을 더 늘려야 한다는 압박을 더 심하게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