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연금 덜 받은 돈 '1인당 610만원'…법정공방 돌입한 금융당국·보험사(종합)

  • 등록 2018-08-13 오후 7:00:02

    수정 2018-08-14 오후 1:55:09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생명 서초사옥 (사진=삼성생명)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최소 7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즉시연금 보험의 계약자 미지급금을 둘러싼 금융감독원과 생명 보험사 간 줄다리기가 법정 공방으로 본격 돌입했다. 국내 최대 생명 보험사인 삼성생명이 가입자를 상대로 덜 준 돈이 없다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고, 금감원도 민원인에게 소송 지원을 하기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삼성생명, 보험 계약 민원인에 민사 소송 제기

삼성생명은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 회사가 판매한 즉시연금(상속 만기형 또는 만기 환급형) 보험 상품 계약자 1명을 대상으로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계약자가 금감원에 보험금을 덜 받았다며 민원을 제기하자 법원에 돌려줘야 할 채무(미지급 보험금)가 없음을 확인해달라고 소송을 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앞서 작년 11월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가 즉시연금 가입자 강모씨에게 덜 준 보험금을 돌려주라고 결정하자 올해 초 이 같은 권고를 받아들여 1500만원가량을 지급했다. 그러나 금감원이 ‘소비자 보호’를 내세우며 회사 측에 다른 즉시연금 가입자에게도 같은 기준으로 미지급금을 돌려주라고 압박하자 이를 거부했다. 지난달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법적 쟁점이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법원 판단에 따라 일괄 지급 여부를 결정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이미 돈을 환급해준 강씨가 아닌 다른 민원인을 상대로 이날 실제 소송 절차에 착수했다. 회사 측은 “해당 민원의 권리·의무 관계를 빨리 확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소송 이유를 들었다.

삼성생명은 금감원이 요구하는 즉시연금 보험금 과소 지급액 4200억원 전액이 아닌 370억원가량만 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계약자에게 우선하여 돌려줄 계획이다. 보험 가입 당시 가입자에게 “매달 최소 이 정도의 연금(이자)을 받을 수 있다”며 제시한 예시 금액보다 실제 보험금을 덜 받았을 경우에만 그 차액을 환급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를 그대로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견해다. 금감원은 8년 만에 민원인 소송 지원 제도를 재가동해 보험사와 소송을 벌이는 민원인에게 변호사 비용 등 소송 비용을 지원할 방침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증권 분야를 제외하면 손해 입은 소비자 중 일부만 소송에서 이겨도 같은 피해를 본 소비자가 모두 배상받는 ‘집단 소송 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은 만큼 개별 민원인의 소송을 각각 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면서도 “일단 법원 판결이 나오면 보험사가 다른 소비자에게도 판례를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약관 설명 부실” VS 보험사 “사업비 공제 당연”

금감원과 보험사 간 갈등의 중심에는 즉시연금 상품의 ‘약관’이 있다.

상속 만기형 즉시연금은 처음 가입 때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면 보험사가 매달 보험료를 굴려 얻은 이자(연금)를 가입자에게 지급하고 만기 때 최초에 납부한 보험료 원금 전액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문제는 보험사가 처음에 받은 보험료에서 사업비·위험 보험료 등을 뺀 순보험료(원금의 94~95%)를 굴려 이자 수익이 발생하면 만기 때 보험료를 돌려줄 재원을 미리 제외하고 나머지 금액만 이자로 지급했다는 점이다.

시중 금리가 높을 때는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이자를 넉넉하게 줄 수 있어 문제가 없었지만, 금리가 많이 내리자 즉시연금 계약자의 불만도 덩달아 커졌다. 보험사가 만기 때 보험료 원금 상환을 위한 준비금을 대거 쌓으면서 상품 가입 당시 최저로 보장한 이자율을 적용했을 때의 예시액보다 적은 이자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위는 삼성생명 즉시연금의 경우 상품 약관에 매달 이자 지급 시 보험사의 사업비와 위험 보험료 등을 뗀다는 설명이 명확하게 담기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분쟁조정위는 또 과거 한화생명이 판매한 상속 연금형 즉시연금 상품을 대상으로 한 계약자가 민원을 제기하자 지난 6월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한화생명은 약관에 “만기 보험금을 고려해 연금을 지급한다”는 설명을 넣기는 했다. 하지만 분쟁조정위는 “‘만기 보험금을 고려하여’라는 문장만 보고 계약자가 만기 보험금 지급 재원을 차감하고 매달 연금액을 지급할 것이라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금감원이 부실한 약관을 문제 삼아 보험사가 임의로 공제한 보험금을 토해내라고 압박하지만,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계약자가 낸 보험료에서 회사의 비용인 사업비를 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한화생명도 민원인에게 덜 지급한 보험금을 환급하라는 금감원의 분쟁 조정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9일 ‘불수용 의견서’를 제출했다. 한화생명 측은 “다수의 외부 법률 자문 결과 약관에 대한 법리적이고 추가적인 해석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향후 법원 판결 등으로 지급 결정이 내려지면 모든 가입자에게 동등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즉시연금 추가지급액 1인당 610만원…21개사 중 3개사만 지급 결정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감원에서 열린 금융 감독 혁신 과제 발표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따라 금감원과 생명 보험사 간 즉시연금을 둘러싼 신경전도 장기화할 태세다.

금감원이 최근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실에 제출한 ‘즉시연금 분쟁 관련 현황’ 자료를 보면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 등 국내에서 영업하는 21개 생명 보험사가 금감원 분쟁조정위 결정에 따를 경우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은 모두 7750억원에 달한다. 금감원이 보험사로부터 추가 지급액 추정액을 제출받은 올해 4월 말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발생한 미지급금(지연 이자 포함)이 3003억원, 앞으로 발생할 미지급금이 4747억원이다.

과거 21개 보험사가 판매한 즉시연금에 가입해 지금도 보험 계약을 유지 중인 계약자(작년 말 기준 12만7087건)에게 1인당 609만8184원씩을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이미 보험 계약 기간이 끝난 계약자를 포함한 전체 가입자(16만2501건)를 기준으로 할 경우 1인당 약 477만원 꼴이다. 이 금액은 앞으로 더 불어날 가능성도 크다. 시중 금리가 계속 하락할 경우 향후 발생할 미지급금도 그만큼 늘어날 수 있어서다.

그러나 현재까지 금감원에 즉시연금 과소 지급액을 계약자에게 환급하겠다고 밝힌 보험사는 AIA생명(25억원), 신한생명(24억원), DB생명(2억원) 뿐이다. 21개 생명 보험사 중 3개사만 금감원 권고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미지급금을 토해낼 경우 1년 치 순이익을 까먹는다며 울상인 보험사도 적지 않다. 본지 분석 결과 KB생명, KDB생명, DGB생명, ABL생명, 처브라이프생명, 현대라이프생명 등 6개사는 즉시연금 추가 지급 예상액이 작년 한 해 당기순이익보다 많은 실정이다. 환급액 규모가 만만치 않아 회사도 쉽게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미 발생한 미지급금은 계약자에게 한꺼번에 줘야 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금액은 매달 또는 연 단위로 연금을 지급할 때마다 합쳐서 줘도 된다”며 “일시에 다 줘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보험사 부담이 무조건 크다고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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