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널브러진 '변'…머리카락서 키운 '생명체'

김종영미술관 '2017 창작지원작가전'
고상현·임정수·임지윤 신진작가 3인
'배변' '생활용품' '인체' 등 소재로
'그들만의 개념' 설치미술로 풀어내
  • 등록 2017-07-31 오전 12:12:01

    수정 2017-07-31 오전 1:10:49

고상현의 ‘피시즈’ 중 일부. 온갖 색과 다채로운 형태를 갖춘 동물의 배설물 모형으로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인간 개개인에 체화한 사유의 결과’라고 했다(사진=김종영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이게 대체 뭔가. 전시장 조명 아래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이것은 분명 동물의 배설물이다. 그것도 온갖 색을 입고 다채로운 형태까지 갖춘. 당황하지는 말자. 어디까지나 모형이니까.

재미있는 건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벽면의 글귀. 1000자 원고지 100장 위에 또박또박 손으로 직접 써내려간 글귀의 프레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다. ‘모든 나는 죽어서 OOO이 되었다.’ 그래, 죽어서 뭐가 됐을까. 주걱부리황새, 좀뱀잠자리, 사막비개구리, 절벽산적 딱새, 산갈치….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이 올해도 젊은 작가 3인에게 판을 내줬다. 고상현(29), 임정수(29), 임지윤(36)이 나선 ‘2017 창작지원작가전’이다. 지난해 이미 선정한 작가들에게 한 달여간 전시기회를 준 자리다. 원숙함보다 가능성을 먼저 본다. 올해는 특히 ‘개념’을 요구했다. 새로운 착상·방식·의미를 중시했다는 뜻이다. 설치작품으로 전시를 꾸린 것도 새롭다.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인 우성 김종영의 뜻을 살리는 만큼 그동안은 주로 조각작품에 할애했던 터다.

덕분에 전시장에 배변을 왕창 들여온 고상현 작가의 ‘피시즈’(Feces)가 가능했다. 고 작가는 이를 두고 ‘인간 개개인에 체화한 사유의 결과’라는 의미를 달았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모인 사회에 수없이 쏟아지는 사건·사고, 또 제각각인 반응. 고 작가는 그 복합적인 현상을 배설물로 모으려 했다. “더럽고 냄새나는 존재가 한 데 뭉치고 뭉쳐 생명력을 얻는다”고. 게다가 인간은 하나의 존재로 볼 수가 없다. 다른 속성 탓이다. ‘죽어서 되었다’는 ‘OOO’이 바로 그거다. ‘모든 나’가 모여 역사를 만든다고. 지독하게 쌓고 모은 상징이다.

고상현의 ‘피시즈’ 중 일부. ‘모든 나는 죽어서 OOO이 되었다’는 프레임으로 1000자 원고지 100장을 또박또박 손글씨로 채웠다(사진=김종영미술관).


임정수 작가의 ‘벽, 땅, 옆’은 고 작가에 비하면 ‘순하다.’ 나비·동물·해·별·나무·구름·풀·물방울·달·꽃·해 등이 등장하니까. 그런데 주제는 역시 단순치 않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봐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 작품은 늘 접하는 생활용품으로 꾸렸다. 무작위로 구입한 천·울타리·러그·벽걸이 등을 전시장 곳곳에 무리지어 설치한 뒤 당돌하게 묻는다. “전통조각은 왜 물성과 덩어리에만 관심을 가졌나.” 그러곤 사람이 대상을 인식하는 첫째는 ‘표면’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관람객이 전시공간을 그저 눈으로만 보지 않고 감각적으로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미술은 시각보다는 공기나 촉각예술”이란 거다.

임정수의 ‘벽, 땅, 옆’ 중 일부. 천·울타리·러그·벽걸이 등 늘 접하는 생활용품을 무리지어 꾸몄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봐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사진=김종영미술관).


일찌감치 프랑스로 가 15년째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임지윤 작가는 ‘배랭귀지’(Balanguage)란 신조어를 꺼내놨다. 균형(balance)과 언어(language)의 합성어다. 임 작가는 작품이 과도하게 언어화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단다. 쉽게 말해 ‘꿈보다 해몽’이면 곤란하다는 거다. 시각예술과 언어의 균형은 꼭 필요하다고. 임 작가는 그 균형을 작업단계의 짧지 않은 여정으로 찾았다. 실제 머리카락을 촬영하고, 그 위에 드로잉을 붙이고, 그 드로잉에서 거대한 설치작품을 꺼내고. 가느다란 선 한 줄이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입체가 되는 과정을 집약했다. “평면 속에 갇혀 있는 드로잉이 3차원의 공간에서 활보하도록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웅크린 동물처럼 시선을 압도하는 설치작품은 색화지를 뭉치고 잘라 만든 것. 유독 사람 몸에 관심이 많은 건 정형외과 의사인 아버지 영향이란다. “잘린 인체를 보고 영원할 수 없는 몸을 봤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전시는 8월 27일까지다. 고상현·임정수·임지윤, 세 작가는 각각 서울대·한국예술종합학교·홍익대를 졸업한 터. 묘하게 다른 학교색을 빼내는 재미도 각별하다.

임지윤의 ‘배랭귀지’ 중 일부. 머리카락을 촬영하고, 그 위에 드로잉을 붙이고, 그 드로잉에서 꺼낸 거대한 생명력이다. 가느다란 선 한 줄이 엄청난 규모의 입체가 되는 과정을 집약했다(사진=김종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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