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총의 소확행] 신뢰의 지역 화페 '두루'를 아시나요?

필요에 따라 컴퓨터로 자체 발행해 사용
음식·옷·생필품부터 의료 서비스까지 거래
지역사회 기부 일환으로 가입하는 회원들 많아
  • 등록 2018-11-18 오전 12:01:00

    수정 2018-11-18 오전 12:01:00

[이데일리 김은총 기자] 소년 시절 빵을 훔쳤다가 교도소에 갇혔던 한 청년이 땡전 한 푼 없이 출소했다. 곧장 이발소로 향한 청년은 머리를 다듬고 나와 근처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동네 목욕탕에서 깨끗하게 몸을 씻고 새 옷을 사 입으며 청년은 다짐했다. 오늘부터 새로운 삶을 살겠노라고.

땡전 한 푼 없는 청년이 어떻게 머리를 다듬고 식사를 하며 목욕을 하고 옷을 살 수 있었을까. 답은 지역 화폐에 있다. ‘두루’는 필요한 사람이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체 발행할 수 있는 대전의 지역 화폐다.

청년은 이발소에서 5000두루, 식당에서 3000두루, 목욕탕에서 2000두루, 옷가게에서 1만두루, 총 2만 두루를 지출했다. 고로 현재 청년의 재정상태는 마이너스(-) 2만두루다.



1999년 지역품앗이 ‘한밭레츠’가 만든 두루는 지난해 기준 670가구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한해 거래는 8070건, 거래액은 2억4200만원에 달한다. 종류도 다양하다. 음식과 식료품은 물론 옷과 생필품, 의료 서비스까지 가능하다.

거래 방법은 이러하다. 청년에게 1만두루를 받은 옷가게 사장은 이를 이용해 이발소에서 두 번(5000두루x2) 머리를 다듬을 수 있다. 5000두루를 받은 식당 주인은 또 다른 회원이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에서 식재료 5000두루어치를 살 수 있다. 이발소 사장이 받은 5000두루는 감기에 걸린 아내가 가맹 한의원에 진료비로 지불할 수 있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청년이 빚진 2만두루는 어떻게 되나? 간단하다. 새로운 삶을 살면서 열심히 갚으면 된다. 그럼 안 갚고 도망가면 어떻게 되나? 어쩔 수 없다. 애초부터 두루는 청년과 같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신뢰의 화폐’인 셈이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사람들은 반성하자. 자본주의 사상에 너무 물들었다. 실제 두루 회원들은 거래나 기타 활동보다는 지역사회발전을 위한 기부 형태로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속한 지역과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고운 마음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두루는 실물 화폐가 아니므로 한계가 없다. 설사 청년이 2만두루를 못 갚아도 이발소와 식당, 목욕탕, 옷가게 주인이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미 청년으로부터 두루를 받았으니 정당하게 다시 사용하면 된다. 2만두루의 빚은 오직 청년에게만 있다.



두루는 기본적으로 물품과 노동력을 교환하는 ‘레츠(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형태의 지역 화폐다. 1983년 캐나다 코목스 밸리 마을에서 주민들이 시작한 ‘녹색달러’가 레츠의 시초다. 호주의 ‘에코’, 미국의 ‘타임달러’, 일본의 ‘아톰 통화’ 등이 현재 대표적으로 발행되고 있는 레츠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8월 기준 10개 시도 63개 기초 지자체들이 지역 화폐 혹은 지역 상품권을 발행해 운영하고 있다. 인천 1곳, 광주 1곳(광산), 경기 4곳, 강원 10곳, 충북 8곳, 충남 8곳, 전북 4곳, 전남 11곳, 경북 8곳, 경남 8곳 등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 9월에 발행된 경기 시흥의 ‘시루’는 현재까지 4000여곳의 가맹점을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행 한 달여 만에 2018년도 유통목표인 20억원을 조기 달성해 10억원 가량이 추가 발행·유통됐다.

아쉬운 것은 시민들 사이 자생적으로 발아한 순수한 목적의 지역 화폐가 점점 사라지고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지역 화폐만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 지역 화폐에 대한 법안을 제정하고 부정 사용자에 대한 처벌기준을 마련하자는 목소리 역시 지역 화폐의 본질적인 목적을 망각하는 일은 아닐까.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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