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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프랑스 노란조끼 운동을 필두로 유럽 전역에서 반(反)EU·극우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골칫거리다. 유럽이 글로벌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른다.
제조업 기반 수출주도 성장…보호무역에 한계 봉착
뉴욕타임스는 “독일이라는 기관차가 없다면 유럽은 브렉시트와 미국과의 무역전쟁, 이탈리아 재정위기 등의 충격을 견디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독일의 위기는 유럽의 위기라는 얘기다.
독일은 유로존 경제의 3분의 1(29.2%)을 차지하고 있다. 독일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5%로 잠정 집계됐다. 5년 만에 최저치다. 유로존 국가 평균치(1.8%)보다 낮고, 브렉시트에 시달리는 영국(1.4%)을 겨우 앞섰다. 올해 성장률은 작년보다 더 낮은 1.0%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예비치)은 0%에 그쳤다. 전분기 마이너스(-)0.2%보다는 개선됐지만 시장 예상치 0.1%를 밑돈 수치다.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등 일회성 요인을 감안해도 회복이 더디다는 분석이다.
발목을 잡은 건 GDP의 47%를 차지하는 수출이다. 독일 수출은 지난해 11월 0.1% 증가에 그쳤다. 12월엔 4.5% 감소했다.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 영국 브렉시트, 중국 경제둔화 우려 등으로 역내 EU 시장과 중국에서 수요가 크게 위축된 탓이다. 독일 전체 수출에서 EU 28개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9%, 7%다.
수출은 그동안 독일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파고를 넘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유로화 평가 절하 덕분에 미국이나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유럽 위기가 독일에겐 호재였던 셈이다. 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아쇠를 당긴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를 덮친 이후 수출주도형 독일 경제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가 직격탄을 맞았다. 무역장벽 뿐 아니라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등 친환경 정책도 한 몫을 했다.
미국은 유럽산 자동차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재개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향후 브렉시트, 중국 경제둔화, 미국의 수입 자동차 관세 인상 등에 따라 독일 경제 둔화가 지속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新성장 동력 부재…제조업 강국의 위기
주독 영국대사를 지낸 폴 레버는 그의 저서 ‘베를린이 지배한다(Berlin Rules)’에서 독일 경제의 강점으로 제조업을 꼽았다. 우수한 기술력을 앞세운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가 독일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라는 설명이다. 제조업은 독일 경제에서 약 20%를 차지한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산업생산이 꺾이면서 걱정이 커지고 있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12월 제조업생산은 전월대비 0.4% 감소했다. 시장에선 0.8% 증가를 예상했으나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10월(-0.5%), 11월(-1.9%)에 이어 석달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12월 제조업 신규주문도 전년 동기대비 1.6% 감소했다. 수출 부진으로 독일 제조업 전반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도 마땅치 않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IT기반 혁신 산업에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역시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나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독일 정부는 기술혁신이 그간 독일 경제 버팀목이었던 제조업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내부적으로 정치 불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도 악재다. 극우 포퓰리즘이 급부상하면서 70여년간 유지해온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총선에선 기사당이 텃밭 바이에른주에서 반(反)난민, 덱시트(독일의 EU 탈퇴) 및 유럽의회 해체 공약을 앞세운 극우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에 참패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임기가 끝나는대로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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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독일 외에도 프랑스(유로존 GDP의 20.5% 차지), 이탈리아(15.4%), 스페인(10.4%) 등 이른바 ‘빅4’의 경제전망도 밝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 4개국이 유로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5%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독일이 올해 소비 및 산업생산 부진으로 1.3%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종전 대비 0.6%포인트나 낮춘 것이다. 이탈리아 성장률은 약한 내수와 정부 차입비용 증가로 0.4%포인트 내린 0.6%로 제시했다. 프랑스 성장률은 노란조끼 시위로 0.1%포인트 내린 1.5%로 전망했다.
EU집행위원회는 지난 7일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1.3%로 하향 조정했다. 작년 11월 1.9%에서 석 달 만에 0.6%포인트나 낮춘 것이다. 작년 4분기 유로존 산업생산도 전년 동기대비 1.7% 줄었다.
유로존 경제 위기는 세계 경제에도 악재다. EU의 GDP는 2017년 기준 15조3000억유로다. 달러로 환산하면 약 17조2500억달러. 미국(20조달러)보다는 작지만 중국(13조달러)보다 크다. EU가 전 세계 수출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6%다. 2014년 중국에게 추월 당했지만 줄곧 2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EU가 흔들리면 글로벌 경제에 큰 충격이 갈 수밖에 없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10일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4대 먹구름으로 △무역전쟁 △금융 긴축 △브렉시트 불확실성 △중국 경기 둔화를 꼽았다. 라가르드 총재는 “구름이 많다는 건 폭풍이 시작될 조짐”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