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유럽은 어떻게 출산율을 끌어올렸나

  • 등록 2019-03-25 오전 5:00:00

    수정 2019-03-25 오전 5:00:00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200년 전에 멜서스라는 경제학자가 있었다. ‘인구론’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일반인에게는 ‘인구는 1, 2, 4, 8, 16의 속도로 늘어나는 반면 식량은 1, 2, 3, 4, 5의 속도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가 필연적으로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측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전쟁, 기아, 질병이나 사람들이 성욕을 억누르고 결혼을 미루는 도덕적 자제를 통해서만 세상이
질서를 유지될 수 있다고 봤다. 빈민구제법의 폐지도 주장했는데 자연적인 인구 조절 기능을 해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실제로 받아들여졌다. 영국의 피트 수상이 빈민구제법을 시행 4년 만에 철폐했고, 오스트리아와 바바리아 같은 곳에서는 18세기까지 극빈자의 혼인을 금지하는 법 조항을 시행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멜서스의 얘기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이론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인구가 느는 속도 이상으로 식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유럽은 출산율 저하에 시달렸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세상은 인구 증가보다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놓고 고민하게 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유럽 여러 나라는 인구를 늘리기 위한 대책에 나섰다.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출산과 양육을 보조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아동수당과 육아휴직은 물론 공적 보육시설 확대를 통해 유아 교육의 절반 이상을 정부가 담당하는 시스템도 구축됐다. 출산과 양육을 개인과 가족 영역에 맡겨 놓지 않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부담의 상당 부분을 떠안은 것이다. 그 덕분에 2000년을 전후해 유럽의 인구 증가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어떤 정책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러 정책을 한꺼번에 사용하다 보니 이것저것의 영향이 합쳐져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작년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이 0.98명으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유일하게 출산율이 0명대로 떨어진 나라가 된 것이다. 여성이 평생 동안 채 한 명의 아이도 낳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이 추세대로 가면 당초 예상보다 빠른 2024년부터 인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2015년에 정부가 10년 동안 108조의 예산을 투입하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청년 일자리·주거대책 강화, 난임 등 출생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 맞춤형 돌봄 확대 및 교육 개혁, 일·가정 양립 사각지대 해소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아직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여전히 감소세다.

작년 우리나라의 아동·청소년 1인당 보건복지 예산은 18만 6640원이다. 노인 보건복지 예산은 165만 2766원이다. 인구를 늘리는 데 필요한 예산이 노인 복지 예산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이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기 때문에 비율이 낮은 게 당연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 상황이 종합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경우 출산율 개선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선진국의 예를 보면 국가가 역할이 약할 경우 젊은 세대가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정도가 심해졌다. 일본의 경우 30대 중반 연령의 사람 중 결혼을 한 비율이 60%를 겨우 넘을 정도였다.

앞으로 인구 증가율 둔화에 따른 후유증이 여러 군데에서 나타날 것이다. 미래 연금 부담자와 생산 가능인력이 줄어드는 건 이미 현실화됐고 조만간 자산가격 하락과 국방력 약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작년처럼 32만명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20년 후에는 필요한 국방인력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구문제에 피상적으로 접근할 때가 아니다. 선진국이 쓸 수 있는 모든 대책을 한꺼번에 투입해 출산율 하락을 막았던 것처럼 우리도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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