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운용사가 투자한 종목, 보고서로 밀어주는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증권사 거쳐 종목 투자하면
증권사가 해당 종목 커버리지 개시하고 보고서 출시
보고서로 주가 오르면 투자가 이익 커져 불공정 지적 일지만
내부통제 전무…증권사 "우리가 아니라 고객이 투자한 것"
  • 등록 2019-05-24 오전 5:50:00

    수정 2019-05-24 오전 9:22:56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유니켐, 팰리세이드 효과 시작’

헤지펀드운용사 아샘자산운용은 2017년 6월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가죽가공업체 유니켐 전환사채(CB) 18억원 어치를 인수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9월을 유니켐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낸 뒤 이달 20일까지 5차례 더 냈다. 첫 보고서 작성 당시 1520원이던 이 회사 주가는 마지막 보고서가 나온 이달 20일 2310원으로 52% 뛰었다. 최근 1년간 유니켐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낸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이 유일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PBS) 고객을 위한 도 넘은 서비스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성 시비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3일 이데일리가 최근 1년간 금융감독원 공시와 에프앤가이드 리포트를 비교한 결과, PBS 고객인 자산운용사가 인수한 전환사채의 전환 청구일 전후 3개월새 해당 종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증권사는 앞서 한국투자증권을 포함해 KB증권,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으로 파악됐다.

NH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는 이달 4일 전환청구일이 도래한 에이스테크에 대한 보고서를 9일과 16일 차례로 발표했다. 이 회사 주가는 이날 9640원으로 마감해 전환청구일 직전 종가(8290원) 기준으로 16.2% 올랐다. KB는 핸디소프트에 대해, NH·신금투·삼성·키움 증권은 비에이치에 대해 전환청구일 이후 각각 보고서를 냈다. 핸디소프트 주가에 이들 보고서가 큰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보고서를 낸 시점에는 이목이 쏠렸다.

전환사채는 전환 청구일 이후 주가가 오르면 투자가 이익이 커진다. 예컨대 1주당 1만원에 10주를 전환할 수 있는 권한이 붙은 전환사채를 인수한 투자가는, 투자 이후 혹은 전환 청구일이 시작된 뒤에 주가가 1만원 이상으로 오르면 오른 만큼이 이익으로 돌아온다. 증권사가 종목에 대한 긍정적인 보고서를 작성해 주가에 영향을 주는 것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환사채를 인수한 직후 보고서를 낸 증권사도 상당했다. 앞서 비슷한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KB·NH투자(각 4건) △미래에셋대우(3건) △삼성·메리츠(1건) 등이었다.

미래에셋대우는 포커스자산운용 등이 지난해 9월14일 코스모화학 전환사채 40억원을 인수하는 과정을 중개했다. 보름 후 코스모화학을 처음으로 커버리지에 넣고서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가 2만7000원을 제시했다. 목표가는 당시 주가(2만650원)와 비교하면 30% 높았다. 물론 전환청구가 시작된 이후에 주가가 올라야 실제 그 가격에 주식으로 전환해 내다 팔 수 있기 때문에 전환청구일 이전 주가 상승은 크게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미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보고서를 내는 경우도 많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헤지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전환사채 투자 이후 종목 주가가 상승하면 그 자체로 투자가에게 발생하는 이익은 없지만 앞으로 기대수익이 커지는 점이 반영된다”며 “이에 따라 채권 신용등급이 올라가기 때문에 투자가에게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현재 증권업계 자체 규정에 따르면 증권사가 직접 지분을 가진 종목에 대한 보고서를 쓸 경우 관련 사실을 밝혀야 한다. 이해 관계가 크면 아예 분석대상에 넣지 못한다. 하지만 PBS 고객 투자 종목에 대한 보고서는 예외다.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기획부 관계자는 “이런 사례는 규정에서 금지한 보고서 발행 제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당 증권사는 한결같이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해당 종목은 증권사가 직접 투자한 것이 아니라 고객이 투자한 것이라서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제약이 없다는 논리다. KB증권 관계자는 “거래소 규정상 증권사는 상장 주관을 맡은 종목에 대한 보고서를 2년 동안 작성해야 한다”며 “핸디소프트가 2016년 11월 상장할 당시 우리가 주관을 맡았기 때문에 해당 시점에 보고서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종길 금융감독원 자본시장감독국 부국장은 “증권사가 고객 요청으로 해당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이해충돌 조항을 위반한 사례가 적발되지 않는 이상 선후 관계만 따져서 이런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증권사 내부통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매매 중개와 보고서 작성 부서 간 정보를 공유해 보고서를 작성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해외에서도 고객 투자 종목에 대한 보고서 작성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PBS 고객이 CB에 투자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해당 종목을 매수추천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PBS에 대한 서비스로 해당 종목에 대한 긍정적인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종목은 자금조달이 어렵고 덩치가 작은 코스닥 업체가 상당수”라며 “이런 회사는 보고서 하나로 주가 영향을 받기 쉽고, 증권사 커버리지에 없던 곳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애널리스트가 알게 된 모든 종목 정보를 보고서로 작성할 의무는 없다”며 “법적으로 금지할 수 없지만 도덕적으로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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