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경영 악순환 끊자]17년간 채용비리 눈 뜬 장님..'청탁·뒷문인사' 백태

60명 가담해 뇌물 주고 받은 농어촌공사
관피아 내려온 대전도철 사장 '채용비리' 낙마
몰래 가족채용해 억대 급여도..내부고발 없어 대형비리로
"서류심사부터 내부 '짬짜미 인사' 막아야"
  • 등록 2016-04-21 오전 6:30:00

    수정 2016-04-21 오후 2:28:19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악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의 채용·승진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신의 직장’에 취업·근무하기 위해 양심을 저버리는 것은 물론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잇단 비리가 터져 ‘비리 백화점’ 오명을 쓴 한국농어촌공사다. 승진 시험지를 1997년부터 조직적으로 유출해 60명이나 부정 승진했다. 대전지방법원 제3형사부(재판장 황순교·안지연·박지숙)는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 일반 응시자들의 기대를 무너뜨렸다”며 피고 윤모씨에 징역 3년과 추징금 2억1000만원, 피고 엄모씨에 징역 2년과 추징금 2500만원을 선고했다. 비리가 벌어진 지 17년 만인 2014년에야 유죄 판결이 나왔다. 관련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비리백화점 농어촌공사 무더기 승진시험 조작

판결문에 따르면 사건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농지개량조합연합회에 근무하던 윤씨는 한국생산성본부에 해당 연합회 3급 승진시험 출제를 의뢰한 것을 알게 됐다. 윤씨는 당시 생산성본부 자회사인 사회능력개발원 대리로 근무 중이던 엄씨에게 ‘3급 승진시험 문제·답안을 알려달라’며 1000만원을 건넸다. 윤씨는 이를 제공 받고 승진시험에 합격했다. 이 같은 비리에도 윤씨는 2000년 농지계량연합회 등이 통합해 설립된 농어촌공사에서 계속 근무했다.

개인 비리가 발각되지 않자 이들은 조직적인 비리를 모의한다. 이들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생산성본부에서 출제한 농어촌공사의 승진시험 문제·답안을 사전에 유출할 수 있는데 돈이 필요하다’며 승진시험 응시자들을 접촉했다. 주로 전화나 식당에서 제안한 뒤 주차장·갓길 등에서 돈을 건네 받았다. 알선 역할을 할 브로커도 만들어 놓고 ‘승진시험 응시자를 알아보라’며 적극적으로 비리 대상자를 물색했다.

일부는 사기 피해를 입기도 했다. 2012년 당시 한 응시생은 윤씨 말을 믿고 1500만원을 건넸지만 문제·답안을 전달받지 못했다. 당시 생산성본부 리크루트센터가 승진시험을 출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승진시험을 목전에 둔 대부분의 응시자들은 이 같은 유혹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응시자들은 많게는 2000만원 이상을 건넸다. 2009년부터 응시자들이 윤씨에게 문제·답안을 제공 받는 대가로 건넨 돈은 2억원이 넘었다.수년 간 채용 비리가 잇따랐지만 농어촌공사는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재작년 충남경찰청 수사 결과 뒤늦게 드러났다. 부랴부랴 농어촌공사는 연루자 60명 전원을 직위해제 조치했다. 하지만 이미 눈덩이처럼 비리가 불어난 뒤였다. 공소시효가 지난 30명은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해 재판 중이다.

◇마비된 공공기관 인사검증 시스템

대부분의 공공기관의 경우 ‘내부고발자’가 없다 보니 조직적인 대형 비리가 뒤늦게 적발된다. 대전도시철도공사는 지난달 3일 치러진 신규 직원 채용 때 면접시험 평정표 점수를 조작해 부정 합격 시켰다. 차준일 전 사장을 비롯한 직원 7명과 민간 면접위원 1명이 조직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피아 논란을 빚었던 차 전 사장은 취임 6개월만에 해임됐다. 비리를 내부고발한 임원은 해임됐고 가담한 직원들은 정직, 감봉 조치됐다.

해외 한국문화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A씨는 2012년 채용공고 등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딸을 행정직원으로 채용했다. 또 문화원 산하 세종학당에 한국어 강사 적임자가 없다면서 배우자를 전임강사로 뽑기도 했다. A씨의 부인과 딸이 받은 돈은 9만2000여달러(약 1억900여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감사원 감사를 통해 뒤늦게 적발됐고 A씨는 정직 처분에 그쳤다.

점수조작 등으로 최근 임원이 기소된 중소기업진흥공단, 한국광물자원공사나 청탁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강원랜드 등도 뒤늦게 사건이 드러난 경우다.

전문가들은 현재 공공기관 인사·감사 시스템이 사실상 제기능을 못하는 상황이라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서류심사 때부터 외부 심사관 참여를 대폭 늘려 공공기관 ‘짬짜미 심사’를 방지해야 한다”며 “제도적으로도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둬 조직문화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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