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을 해도 안됐으니… 더 깎고 빚을밖에"

원로조각가 최종태 최근작 60여점
가나아트센터서 '영원의 갈망' 전
흙·나무·돌·철…평생 여인상 빚어
그래도 "스승 김종영 벗는 데 25년
여든이 넘어서야 머릿속 조용해져"
가톨릭신자로 만든 길상사 '관음상'
문 대통령, 교황 선물 두 점도 화제
  • 등록 2018-10-22 오전 12:12:01

    수정 2018-10-22 오전 12:52:18

원로조각가 최종태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서 연 ‘영원의 갈망’ 전에 세운 자신의 작품 ‘얼굴’(2015·브론즈) 옆에 섰다. 애정 어린 눈빛으로 작품을 쓸어내리며 ‘아직 덜 갔어’ ‘아직 덜 됐어’를 연발하던 작가는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못 가긴 했지만, 요기까지밖에 못 하긴 했지만 내 힘껏 노력은 했어. 한 거는 잘한 거여”(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64년을 했는데도 안됐거든.” “무엇이 안됐다고 하시는 겁니까?” “마음에 ‘끝이다’라고 와야 하는 데 그게 안됐거든. 그러니 어떻게 해야 돼야? 더 해야지….”

자신이 빚은 한 여인을 고즈넉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가 말문을 열었다. 무슨 토를 달겠는가. 아흔을 바라보는 노장은 아직 아니라는데. 60년을 넘겨 흙과 나무, 돌과 철로 빚은 수많은 여인들이 말간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고, 더 오를 수 없을 조각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가 넘친다. 그뿐인가. 달관한 듯 초월한 듯 어디 한군데 모나지 않은 부드러운 성품은 자신이 빚어낸 그들과 꼭 닮았다. 그런데도 아직 안됐다고 하지 않나.

조각가 최종태(86·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설명이 더 필요한가. 그는 곧 그가 만든 작품이다. 평생 ‘여인상’을 깎고 빚었다. 머리와 몸통만으로 나눈 간결하고 단출한 인간상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롭고 순수하고 넉넉하다. 이들이 거친 세상을 끌어안는다. 서양과 동양의 구분도 없고 종교와 세속의 구분도 없다. 구상이냐 추상이냐를 따지는 건 더 우습다. 그저 예술이라 불리는 조각만 있다.

최종태의 소묘화 ‘바다’(2018·종이에 파스텔)와 조각상 ‘여인’(2013·나무에 채색). 동그란 얼굴의 여인상은 초록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영락없는 ‘한국여인’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자코메티가 그거여. 해도 끝이 안 온 거여. 그래서 또 한 거여. 하나를 만들면 조각 관두고 놀러다닌다고 그랬어. 사르트르한테 그랬대. 그런데 그 하나가 안된 거지. 안됐기 때문에 끝까지 한 거여. 나도 그 양반과 비슷한 거 같어.”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선배는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한평생 무던히 닮으려 했던 그이다. “나는 그쪽으로 가려고 하는 것뿐이지. 너무 멀어. 갈 길이 너무 멀어.” 그렇다면 이제껏 어찌 해왔다는 건가. “머리 안에 멕시코 사람이 한 거, 이집트 사람 한 거, 아프리카 사람 한 거 다 있어. 하지만 그 사람들이 한 게 내 작품은 아니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저리로 멀리 나아가야 해. 머리 안에 있긴 한데, 나한테 작용을 안 해야 하는 거여.”

들끓던 생각과 복잡한 마음이 왜 없었겠나. 세상이, 시대가 편히 놔두질 않았을 거다. 그랬던 그이가 이제야 평온해졌단다. 와글거리던 머릿속이 조용해졌단다. 여든이 넘어서다.

최종태의 ‘얼굴’(2014)과 그 뒤로 또 다른 ‘얼굴’(2017)이 보인다. 앞의 얼굴은 나무에 채색을 했고 뒤의 얼굴은 나무 질감 그대로를 드러냈다. 절제미를 물씬 풍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마음 급한’ 법정 스님과의 호흡…길상사 ‘관음보살상’

작가가 대중의 관심을 끈 ‘사건’이 있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 세운 ‘관음보살상’(2000)이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조각가가 제작한 ‘관음상’으로 알려지면서 세간의 눈과 귀를 잡아끌었더랬다. 반은 관음상을 또 반은 성모상을 닮은 그 작품. 당시 얘기를 더 들었다. 알려진 대로 법정 스님의 제안이었나. “아니야. 누가 제안한 건 아니었어. 내가 그걸 하겠다고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녔지. 김수환 추기경에게도 말했어. 내가 절을 만나서 한다고 했을 때 천주교가 뭐라 할 건가 물었지. 아니래, 괜찮다고 그랬어.”

뜬금없던 생각은 아니었다. 대학 4학년부터 그는 불교공부를 해왔던 터다. 이미 ‘관음보살상’이나 ‘반가사유상’ 등에 마음을 뺏긴 뒤였던 거다. 한 번쯤 만들고 싶었단다. 그래서 소문을 내고 다녔다는 건데. 그러던 어느 날 ‘입질’이 왔단다. 누가 법정 스님을 만나 최 선생이 이런 생각이 있더란 얘기를 전했다는 거다. 법정 스님이 당장 하자고 덤벼들었다고 했다.

“작업은 잠깐 만에 됐어. 그날 오후에 내가 만들었지. 3시간 흙을 붙여보면 알아, 된다 안된다를. 해보니 되겠더라고. 오랫동안 하려 했던 거였잖아. 그래서 내가 길상사에 전화를 한 거여. 주지 스님과 통화하려고. 그랬더니 법정 스님이 전화를 받아. 전화기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거여. ‘다 됐는데요’ 했지. 그랬더니 ‘지금 갈까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니, 감으로 다 됐다는 얘깁니다’ 그랬지. 그 양반 마음이 급하더라고. 호흡이 그렇게 맞아야 일이 되는 거여.” 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노작가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최종태의 ‘여인’(2016·브론즈)의 앞면과 옆면. 수줍은 듯 두 손으로 가린 얼굴 옆으로 또 다른 얼굴이 보인다. 그 각각 뒤로 성모상을 닮은 ‘여인’(2017·브론즈)과 ‘무제’(2018·브론즈)가 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인생의 선물…김종영·장욱진·김수환·법정

사실 한 사람이 더 있다. 이상으로 닮으려 한 이가 자코메티라면 현실에서 닮으려 했던 그이. 바로 서울대 스승 김종영(1915∼1982)이다. 하지만 추상조각의 대가인 스승을 벗어나야만 했다. 25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언제 벗어났느냐면 1970년대 후반. 1954년에 만나서 20년이 넘도록 김종영 산하에서 못 벗어난 거여. 그러다가 내가 뭘 만들었어. 그때 ‘이제 됐다’ 했지. 얼굴 작품 두 개야. 팔지도 못하고 집에 가지고 있는데, 그걸 만들고 ‘넘어섰다’ 그랬어 속으로.”

최종태의 ‘드로잉’(2017·종이에 펜) 옆으로 ‘기도하는 모습’(2018·나무에 채색)과 ‘무제’(2018·나무에 채색)가 나란히 섰다. 드로잉이 조각품 두 점을 낳았을 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스승을 벗어나는 게 세계미술사를 벗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더란 토로는 괜한 게 아니었다. “어느 날 김종영 선생에게 앞뒤 없이 물었어.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그랬더니 ‘수직선을 그려라, 수평선을 그려라’ 해. 또 ‘사선을 그려라’ 하고. 그러고선 이 양반이 웃더라고. 나도 웃고. 내가 알아들은 거지.” 선문답 같은 이 대화에서 핵심은 사선이란다. 수직선은 이상, 수평선은 현실을 의미하는데, 사선이 그 간격을 조정한다는 거다. 사선이 이상쪽으로 곧추설수록 반고흐 같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그러니 스승은 ‘자기 형편대로 찾아서 해라’는 소릴 한 거라고. “돌아가시기 얼마 전 말년에 물었던 거여. 내가 만난 미술가 중 최고의 도인이 김종영과 장욱진이야. 나는 두 양반하고만 가까이 지냈어. 너무 일찍들 돌아가셨지.” 장욱진은 화가 장욱진(1917∼1990)을 가리키는 거다.

최종태의 ‘엄마와 아이’(2018·나무에 채색)의 앞면과 옆면. 동글동글하고 편안해 보이는 작가의 여인이 모자상으로도 고스란히 연결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최종태의 ‘두 사람’(2017·니무에 채색)과 또 다른 ‘두 사람’(2017·나무에 채색)이 나란히 섰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된 작품들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러곤 그 뒤에 만난 친구가 김수환(1922∼2009) 추기경과 법정(1932∼2010) 스님이란다. “그러다가 두 양반도 돌아가셨어. 그만한 도인들 만나기가 어렵지. 이런 사람들을 어디 가서 만나. 만난 것만 해도 좋지만 그래도 나는 있으면 좋겠어. 지금은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어. 내가 찾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

다 나왔다. 김종영, 장욱진, 김수환, 법정. 작가의 작품세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현실의 인물들. “그 양반들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가 없어. 한마디도 없어. 내가 궁금한 거, 걱정스러운 거를 물어보지. 그러면 자기들이 나름의 얘기를 해줬어. 난 잘 살았어. 네 사람을 만난 것만 해도 어디여.”

원로조작가 최종태가 자신의 작품 ‘얼굴’(2017·브론즈)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게 인간의 본성일 거여. 완전을 향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인간의 본성이여. 진리에 도달하기까지. 그건 영원한 거여. 하지만 못 해요. 그걸 다 알면서 가는 게, 그게 예술가의 길이여”(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독실한 가톨릭신자의 ‘해탈’

작가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개인전을 열었다. ‘영원의 갈망’ 전(11월 4일까지)이라 타이틀을 단 전시는 원로작가에게서 늘 보던 회고전이 아니다. 조각·드로잉·파스텔화까지 60여점을 최근까지의 신작으로 꾸며냈으니까. 채색한 나무와 브론즈, 흙과 대리석으로 다듬은 따뜻하고 맑은 여인상들이 연필·볼펜·사인펜 등으로 그린 드로잉·소묘화와 어우러져 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흙에 가 있나 보다.

“흙이 좋아. 흙을 64년 만진 거여. 이젠 손이 마음대로 가. 머리가 흙을 붙여라 명령하는 건데 그전에 손이 먼저 가서 한다는 거여. 이게 무슨 이치인지 몰러. 누구 명령을 받고 행동을 했느냐는 거여. 무의식이 먼저 하는가 봐. 얼마나 좋아. 나무도 되지만 흙이 더해. 그거 참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어.”

최종태의 여인들. 두 작품 모두 1980년대 제작했다. 왼쪽은 나무부조, 오른쪽은 테라코타부조다. 작품명은 따로 붙이지 않았다. 반가사유상에서 따온 듯 손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은 요즘의 여인상에까지 이어진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렇다면 왜 여인상뿐인가. “그거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조각을 시작할 때부터 여성이여. 성모상을 많이 만들었지만 관음도 여성이기 때문에 내가 한 거여. 그리스철학에 보면 있어. ‘여성적인 것이 영원한 것이다.’ 내 손자 둘 하고, 김 추기경 얼굴하고 예수상, 남자는 요렇게만 만들었어.”

64년, 그이의 화업에 에피소드 하나가 더 붙게 됐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청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방문했을 때 선물 두 점을 가져갔다. ‘성모마리아상’과 ‘예수 그리스도 부조’. 둘 다 작가의 작품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식을 들은 뒤 그이가 했을 얘기가 들리는 듯하다. “예술처럼 좋은 게 없어. ‘해탈’이 그거여. 머리가 와글와글하던 거, 피카소고 마티스고 온갖 세계미술사가 다 들었던 머릿속이 이제야 조용해지는 거.”

원로조각가 최종태. “난 못 가기는 했지만 후회는 없어. 내 힘껏 노력은 했어. 요기까지밖에 못했지만 한 거는 잘한 거여. 10년 전 한 전시 오픈행사에서 이런 얘기를 했어. 이렇게 어려운 걸 젊어서 알았더라면 피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달라졌어. 하기를 정말 잘했다. 그런 거여. 손이 먼저 가서 한다는 걸 알았으니 얼마나 좋아”(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원로조각가 최종태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서 연 ‘영원의 갈망’ 전에 세운 자신의 작품 ‘얼굴’(2015·브론즈) 옆에 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돌발 상황
  • 이조의 만남
  • 2억 괴물
  • 아빠 최고!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