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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퀴즈 몇 개만 풀고 가자. 솔직히 오늘 것은 좀 심각하다. 심심풀이용이 아니니까. 우리 중 누군가를 ‘침팬지보다 못한 부류’에 세워야 할지도 모를, 상당히 중차대한 테스트니까.
‘지난 20년간 세계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① 거의 2배로 늘었다, ② 거의 같다, ③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세계인구의 다수는 어디서 살까?’ ① 저소득 국가, ② 중간소득 국가, ③ 고소득 국가. ‘세계 30세 남성은 평균 10년간 학교를 다닌다. 같은 나이의 여성은 평균 몇 년간 학교를 다닐까?’ ① 9년, ② 6년 ③ 3년.
그리 까다로울 건 없다. 오래 끌 것도 없을 테니 바로 정답부터 알아보자. 세계인구의 극빈층 비율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단다. 인구 대다수는 ‘중간소득 국가’에 살며, 30세 여성은 평균 ‘9년’ 동안 학교를 다닌단다.
자, 어떤가. 예상했던 답인가. 만약 아니라고 해도 그리 낙담할 건 아니다. 채점자의 표현대로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사실 이번 퀴즈의 핵심은 ‘당신의 예상과는 달리’에 있다. 그렇다고 함정이 있거나 난센스 촉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문제를 못 맞혔다면 이유는 한 가지. ‘팩트’를 몰랐기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깜깜하다면 아무리 머리를 싸맨다고 한들 풀 수가 없는 문제인 거다. 하지만 마냥 위안으로 삼을 일은 아니다. 정답률의 심각성 때문이다. 가령 극빈층 비율을 묻는 문제를 맞힌 이들이 세계적으로 7%(한국은 4%), 100명 중 7명밖에 안 된다지 않는가. 이쯤 되면 ‘몇 명이나 맞힐까’가 난이도 ‘상’의 또 다른 문제가 될 판이다. 그건 그렇고 난데없이 웬 퀴즈쇼냐고?
△느낌을 사실이라 믿으니 꼬일 수밖에
눈치챘겠지만 10가지 본능은 일단 세상을 ‘비딱하게’ 보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이 작용했다는 건데. 예컨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눈·귀가 먼저 열리는 성향은 부정본능 때문이란다. 실제 ‘세계가 점점 나빠진다’에 손을 들어보라 했더니 30개국 중 30개국이 절반을 넘겨 “그렇다”고 했다. 특히 한국은 터키·벨기에·멕시코에 이어 부정본능이 센 나라로 꼽히고 있다. 그것도 80%란 압도적인 수치로. 그런데 정말 나빠지기만 하고 있는 건가. 지난 100년간 자연재해 연간 사망자 수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85%, 문맹률은 10%로 줄어들었다는데.
‘세상이 늘 둘로 나뉜다’는 강력한 믿음은 간극본능에서 나온단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등 칼처럼 두 개로 쪼개버리는 구분 말이다. 과연 그런가. 세계인의 75%가 중간소득 국가에서 사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저소득국가에 사는 인구는 9%뿐이라지 않나.
그렇다면 이들 본능은 어디서 새나오는 건가. 결정적으로는 느낌이나 주장이라고 했다. 지극히 사적인 관점을 사실이라고 철석같이 신봉하는 거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뛰어든 오류’인 셈인데. 결국 ‘팩트체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빠진 ‘오해의 늪’이라고 할까.
△세상은 가망이 없다? 나아지고 있다!
방법이 없는 건가. 아니다. 있단다. 소수가 아닌 다수를 보면서 간극본능을 이겨내고, 나쁜 소식을 예상해 부정본능을 죽이란다. 선은 굽을 수도 있고(직선 억제), 위험성은 계산하는 것이며(공포 억제), 느린 변화도 변화니(운명 억제), 범주에 의문을 품으란다(일반화 억제).
그래도 인정할 건 하자. 어쨌든 우려는 사실이 되지 않았나. 침팬지에게는 확실하게 밀렸다. 하지만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를 위한 그림을 보다 화사하게 그릴 수 있게 됐으니까. 시종일관 긍정·낙관의 아이콘으로 꾸민 수치·도표의 영향이 크다. 한국인 10명 중 8명씩이나 믿는 만큼 세상은 절망적이지 않다고, 감히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해도 된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저자들은 최후의 당부까지 잊지 않고 제목 ‘팩트풀니스’(Factfulness·팩트에 충실해 세계를 바라보자는 의미로 만든 조어)에 얹었다. “사실충실성은 건강한 식이요법이나 규칙적 운동처럼 일상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돼야 한다”고. 그래야만 극적 본능도 억제하고, 침팬지까지 이길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