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단체 성희롱 만연...장애여성 고려한 성범죄 대책 마련돼야"

김효진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 인터뷰
2017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포장의 주인공
  • 등록 2019-04-21 오전 6:10:24

    수정 2019-04-21 오전 6:10:24

20여 년간 장애여성 인권을 위해 힘써온 김효진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 (사진=스냅타임)


“장애여성은 장애인과 여성 정체성이 단순히 겹쳐지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결합이 돼 ‘소수자 중의 소수자’가 돼요. 장애인이면서 동시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도 못 받고, 직업도 못 갖고, 당연히 대인관계는 거의 없어요. 그렇게 사회에서 소외되면 빈곤과 질병에 취약하게 되는 악순환이 끊이질 않아요”

장애인이자 여성, 엄마, 인권활동가, 동화작가인 김효진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 대표는 20년 전 개념조차 생소했던 ‘장애 인권’에 꽂혀 “소수자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이러한 김 대표의 오랜 노력으로 2017년엔 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밥 먹어주느냐는 식으로 얘기하시는 분들도 많다”면서 “근데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건 아니잖나”라고 되물었다. 이어 “인권상을 받아 사람들이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느낌을 받아 기뻤다”고 했다.

장애는 개인이 극복해야 할 것 아냐

김 대표의 20여 년간의 장애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의 시작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대표는 “저 또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어렸을 때는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주위에서 많이 얘기했고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며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사회 활동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김 대표는 “장애는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가진 채 살아가는 것 일뿐”이라며 “장애를 개인이 극복해야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국가나 사회가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장애여성으로서 “사회 활동을 하기까지 남들보다 엄청난 시간이 걸렸지만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차별이 어마어마했다”며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던 중 장애인 인권에 대해 최초로 얘기하는 단체에서 공부를 하며 “장애인 차별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여성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

발산역에 위치한 장애여성네트워크. (사진=스냅타임)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김 대표는 “장애여성은 장애인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더욱 심한 차별을 받으며 배제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장애 여성을 ‘여성’으로 고려하지 않는 게 문제가 된다”며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인 부분은 많이 억압됐는데 장애여성은 그보다도 더 심하다”고 말했다.

최근 김 대표는 장애여성들과 대화를 해보니 성적인 것과 관련해 대부분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표현하며 외부 시선에 의해 갇혀 있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말했다. 그는 “비장애 여성 안에서도 스펙트럼이 다양하지 않나”라면서도 “장애여성은 그 스펙트럼이 매우 좁다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분방하지만 반면에는 너무 억눌린 경우로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여권 신장 물결, 장애여성 목소리도 포함돼야

최근 여권 신장 분위기에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것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물론 너무 환영할 일이지만 장애여성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라고 했다. 장애여성은 이미 ‘유전학적·우생학적’ 이유로 인해 낙태허용 조건에 포함됐었기 때문이다. 이에 김 대표는 낙태죄 조항에 의해 “국가가 비장애 여성은 낳고 싶지 않아도 낳으라고 강요하고, 장애여성은 건강하지 못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크니 임신 중지를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며 “국가가 여성의 몸을 구분 짓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여권 운동에 불을 지폈던 '미투'운동이 장애인 단체에서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김 대표는 “장애계 단체 내에서도 성희롱 등 성차별은 만연해있다”면서 “없어서 ‘미투’가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수면 위로 떠오를만한 상황이 되지 않은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전에도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힌 사례는 있었지만 그저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가해자가 사퇴하는 등의 소극적 대처밖에 없었다”며 “사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 자체도 큰 용기가 필요할뿐더러 밝힌 후 그것을 이끌어갈 지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성범죄 피해자가 된 장애여성은 제대로 된 상담이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성범죄 피해자가 된 장애여성은 진술이 일관되지 않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른 특성들이 있을 수 있다”며 “하지만 비정상장애인이 기준이 되다 보니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거절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김효진 대표는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그린 그림이 담긴 공책을 건넸다. (사진=스냅타임)


장애인단체 내부, 장애여성 고려 부족

김 대표는 장애여성의 인권이 고려되지 않고 있는 문제에 대해 장애인단체 내부에 산재된 문제를 지적했다. 김 대표는 “정말 아이러니한 건 장애인 단체장은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다 남성이라는 점”이라면서 “또 그 밑에 국장이나 팀장은 비장애 여성이 직책을 맡고 있어 장애여성은 늘 신입사원 역할에 머물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중요한 직책을 맡지 못하고 떠돌다가 결국에는 도태되는 게 장애여성의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서 김 대표는 장애여성성인권진흥원을 정부 기관으로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하고 있다. 성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장애여성의 특성에 맞는 사전·사후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장애여성성인권진흥원은 “장애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대책이 장애여성 대상 성범죄 문제에 비장애 여성이 기준이 되고 있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장애여성을 기억해줄 것을 당부했다. “사실 정말 단순해요. ‘여성’ 혹은 ‘장애인’ 관련 이슈에 대한 논의 테이블이 있을 때 장애여성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하는 것 같아요. 최근 여성계가 살아나면서 여성인권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는데 관련 논의가 있을 때 장애여성도 기억해 늘 고려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결합은 못 하더라도 장애여성이 있다는 것 사실 하나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스냅타임

[김정은 정성광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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