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장애인 '감동 포르노', 이제는 멈춰야 할 때

비장애인이 이해 없이 장애인 역할 맡아...
장애인에게 편의사항 제공? 고용부터 안되고 있어
장애예술인에 대한 현실적 해결방안 필요
  • 등록 2019-04-21 오전 6:20:16

    수정 2019-04-21 오전 6:20:16

(사진=이미지투데이)


디지털 시대가 심화되고 대중 미디어는 끊임없이 다양한 소재를 통해 시청자와 소통한다. 그 중 ‘장애’와 ‘장애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큰 주목을 받는다. 언어장애가 있는 주인공을 소재로 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작품상을 포함해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등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언어장애를 가진 청소부 역을 맡은 샐리 호킨스는 ‘인생 연기’를 펼쳤다며 호평을 받았다. 최고시청률 23.8%를 기록하며 방영종료된 드라마 ‘SKY 캐슬’에서 정신장애를 가진 케이를 연기한 배우 조미녀 씨에게는 "비중은 적지만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는 호평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꾸준히 장애 그리고 장애인의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많은 미디어에서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보이고 있어 지적받기도 한다.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발달장애인 ‘기봉이’를 흉내낸 신현준 씨는 지난 12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며 주의요구를 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장애에 대한 이해 없이 장애라는 소재를 이용하려는 대중예술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장애인의 꿈은 비장애인이 되는 것? 미디어의 장애인 왜곡

(사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스틸컷)


2018년 개봉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말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상상 속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마치 언어장애를 가진 이들의 꿈이 '노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환상을 안겨준다. 이러한 판타지는 최근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02년 영화 ‘오아시스’에서도 지체장애를 가진 주인공 한공주(문소리 분)가 ‘정상인’으로 변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판타지적 요소로 나온다. 한 누리꾼은 이런 영화들에 대해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장면들을 볼 때마다 불편하다”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헌식 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는 “미디어에서 장애인 캐릭터가 많아졌고 그것이 이전에는 독립영화에서나 이뤄졌다면, 이제는 대중영화나 상업영화와 같은 곳에서도 장애인 캐릭터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고 얘기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예전보다는 캐릭터의 역할 등의 측면에서 장애인 캐릭터 묘사가 진일보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장애인 캐릭터가 완전히 이상적으로 그려졌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여전히 장애라는 플롯이 작품 속에서 극적 감동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농인 배우 김리후씨는 미디어 내 장애인 왜곡에 대해 “비장애인들의 ‘감동 포르노’”라고 말하며 “장애인에 대한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장애인을 멋대로 규정짓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단면”이라고 비판했다. 리후 씨는 미디어에서 왜곡되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줘야 하는 것이라며 “아시안 역할을 아시안이 연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농 역할 또한 농인이 직접 맡아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며 미디어 산업 내 장애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전혀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장애예술인 중 가장 적은 대중예술 종사자

영국의 크리에이티브 스킬셋(Creative Skillset)에 따르면, 영국의 영화 산업종사자 중 장애인의 비율은 0.3%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장애인의 수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가 전무한 상태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에 등록된 방송·대중예술 부문 개인장애예술인은 각각 18명과 26명으로 총 44명이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에서 발행한 ‘장애예술인수첩’에는 총 48명의 대중예술 종사 장애예술인이 등재돼 있다(장애인 복지카드 소지·관련 장르 수상 1회 이상 또는 작품 발표 10회 이상·활동 경력 3년 이상 개인).

그러나 이러한 자료는 장애예술인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하기엔 부족했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측에서는 “장애예술인 당사자가 원하지 않아 장애예술인수첩에 등재할 수 없는 경우도 많고, 여러 가지 문제들로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실태조사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 얘기했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대표는 장애예술인 중에서도 영화나 연극 등에 종사하는 대중예술 종사자가 적은 편이라고 말하며 “미술 쪽은 자신이 혼자 작업해서 전시회를 열어서 작가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영화나 연극 같은 쪽은 장애예술인이 캐스팅돼서 작품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언급했다. 방 대표는 또한 “배우로 캐스팅된다고 하더라도 장애인은 장애를 가진 역할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다”고 말하며 장애인 배우들의 현실에 대해 얘기했다.

차별금지법...편의제공 조항보다 고용문제 해결 필요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인차별금지법) 11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장애인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근로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법률에서 명시한 편의 항목에는 화면낭독, 확대 프로그램 등 장애인보조기구의 설치·운영과 낭독자, 한국수어 통역자 등의 보조인 배치가 포함된다.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이에 해당하는 사업장의 단계적 범위는 ‘상시 30명 이상 1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이가 적용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배우 김리후 씨는 “그런 조항들이 있다고 해도 실제로 장애인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힘이 없는 무명배우이자 농인배우로서 현장에서 편의 제공을 요청해도 귀기울여줄 사람이 없다”고 얘기했다. 리후 씨는 "자신 역시 구화가 돼서 캐스팅에 유리한 면이 있다"며 "수어만 사용할 수 있는 농인 배우들은 엑스트라 역할로도 캐스팅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대표 역시 “그런 조항들이 영화판에서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며 “장애인 배우들이 작품 출연부터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편의 제공과 같은 조항들을 나열만 하는 것보다는 “장애인 쿼터제를 만들어서 어떤 역할이든지 장애인이 작품에 출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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