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에게 묻는다 7]조웅천의 '중간계투로 장수하는 법'

  • 등록 2007-07-23 오후 2:35:25

    수정 2007-07-23 오후 2:39:37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SK 조웅천(36)은 한국 프로야구의 대표 중간계투 투수다. 그저 ‘선발 다음에 나오는 투수’정도로 여겨졌던 불펜 투수의 개념을 바꿔놓은 1세대가 바로 조웅천이다.
 
그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은 꾸준함이다.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50경기 이상 출장하는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투수 최초로 700경기 등판 기록도 갖고 있다.

또한 그는 마무리 투수로도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조웅천은 한국 프로야구 사상 홀드 1위(2000년)와 구원 1위(2003년)를 모두 차지해 본 유일한 투수이기도 하다.

▲중간계투란 무엇인가
기사 첫 머리에 소개하게 되기는 했지만 사실 이 질문은 인터뷰의 가장 말미에 물은 것이다. 솔직히 너무도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이었던 탓인지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의 얘기를 듣던 중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에게 묻지 않으면 정답을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그는 중간계투가 무엇이고 왜 존재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선수였다.

“현대 야구에서 중간계투가 없다면 선발과 마무리도 없다. 없어선 안될 연결선이다. 20일 잠실 경기(LG-두산전)에서 좋은 예가 나오지 않았나. 두산 선발 리오스가 7회까지 잘 던졌지만 중간계투가 막아주지 못하니 승이 날아갔고 마무리 임태훈 역시 세이브는 따내지 못했다.”

▲중간계투와 만남
1990년 태평양에서 데뷔한 조웅천은 95년 까지는 존재감이 많지 않은 투수였다. 95년에 들어서야 첫 승을 거뒀는데 그해 거둔 승수는 2승에 불과했다. 그러다 96년 그는 새로운 투수로 거듭났다. 96년은 조웅천의 11년 연속 50경기 출장이 시작된 해다.

“태평양이 현대에 인수된 뒤 수석코치이던 김재박 코치가 감독님이 되셨다. 현대는 지금도 매년 플로리다로 전지훈련을 가는데 태평양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김 감독님이 코치시절부터 미국 야구를 많이 접하면서 선발-중간-마무리에 대한 개념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감독에 취임하신 뒤 가내영과 나를 불러 중간계투를 맡아야겠다고 하셨다.

당시만해도 마무리에 대한 개념은 정착이 되고 있었지만 중간계투는 그렇지 못했다. 당연히 선발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감독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시겠다고 해 마음을 먹게 됐다. 현대가 좋은 성적을 내면서 중간계투도 많이 부각됐다. 김 감독님은 격려도 많이 해주셨고 연봉 고과 산정에도 도움을 주셨다. 중간계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중간계투 VS 마무리
긴박한 상황에 나가 짧은 이닝을 굵게 막아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중간 계투와 마무리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두 보직은 엄연히 다르다. 중간계투는 잘해도 마무리로는 안되는 투수들이 수두룩하다. 무슨 차이가 있기 때문일까.

체력 부담 = 중간계투 > 마무리
“마무리는 체력적으로나 몸 상태로는 편하다. 몸 관리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나갈 상황도 정해져 있다. 8회 이전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또 점수차도 3점 이내가 보통이기 때문에 알아서 준비할 여유가 있다. 반대로 중간계투는 육체적으로는 더 힘들다. 언제 나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매일 대기해야 하고 나갈 타이밍도 계산하기 어렵다. 계속 어깨만 풀다가 끝나는 날도 있다. 불펜 피칭도 피로가 쌓인다. 그래도 내일 또 대기해야 한다. 체력적 부담은 중간계투가 훨씬 더 많다.”

부담감 = 중간계투 < 마무리
“정신적으로는 물론 마무리가 더 힘들다. 팀 승리를 지킬 수도 있지만 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달라진다. 실패했을 때는 선발이나 중간에 비해 몇배나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중간계투는 그런 부분에선 부담이 덜하다. 내가 많이 해봐서 그런지 몰라도 심리적으로 편하다. 정신적으로는 실패에 대한 부담이 적다.
 
 몸 관리가 훨씬 어렵다. 경기를 대기하면서도 어렵다. 긴박한 상황에 나가는 건 마찬가지지만 내 뒤에 나보다 더 좋은 투수가 있다는 사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큰 힘이 된다. 내가 실점하고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도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마운드에 오르니 훨씬 편하다. 투수는 자신감이 생명이다. 중간계투는 상대적으로 자신감을 갖고 공 던지기 유리한 조건이다.”

▲싱커와의 만남
조웅천과 싱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2000년 처음 선보인 그의 싱커는 마치 절대반지와도 같았다. 그의 야구 인생을 다시 한번 열어 준 절대적인 무기가 바로 싱커다. 조웅천은 이번 인터뷰에서 그동안 가슴 속에 묻어왔던 싱커의 비밀 두가지를 털어놓았다.

“700경기 기록을 세웠을 때 홍보팀을 통해 소감을 밝혔는데 잘못 전해진 사실이 하나 있었다. 싱커를 김시진 코치님(현 현대 감독)께 배웠다고 기사가 나왔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김 코치님 덕분에 배운 것이다.

처음 접한 것은 97년 플로리다로 마무리캠프를 갔을 때다. 미국에는 많지 않은 사이드암 인스트럭터(이름은 기억 못함)에게 배웠다. 신인이던 (언더핸드)박장희와 내게 서클 체인지업을 가르쳐 줬다. 나한테 너무 안 맞았다. 그래서 좀 하다가 말았다. 시즌때는 못 써먹고 캐치볼 할때만 조금씩 연습 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99년 11월에 오릭스 가을 캠프에 참가하게 됐다. 사실 그해 11월에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결혼식이 있었다.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김 코치님이 내게 “이제 위기가 온 것 같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같이 갈 것을 권유하셨다. 한참 고민하다 결국 따라나섰다.

그때 만난 인스트럭터가 사이드암으로 200승을 따낸 아다치상이었다. 내가 먼저 물었다. “이런 공을 던질 수는 있는데 잘 안된다. 잘 던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나는 변화구는 힘 빼고 천천히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다치상은 다른 얘길 했다. 연습때부터도 직구 던지 듯 전력으로 던져야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폭투가 엄청 나왔다. 그래도 계속 힘껏 던져봤다.
 
훈련이 끝난 뒤엔 비디오로 폼을 분석하면서 놓는 포인트에 대해 많은 설명을 들었다. 일본 불펜 포수들은 투수가 집중력있게 던질 수 있도록 공 잡는데 신경을 많이 써준다. 그런 부분이 도움이 많이 됐다. 당시 마무리캠프 청백전에 나서 실전에도 써봤다.
 
 현재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다구치 소도 그때 같이 경기를 하고 그랬다. 그런 선수들을 상대로 던져봤는데 거의 맞히질 못하더라. 계속 헛스윙과 파울만 나왔다. 그때 완전히 자신감을 얻었다. 그때 배운게 아까워 12월에도 혼자 도원구장에 나가 공을 던졌다. 그때 계속 갈고 닦은 것이 확실하게 도움이 됐다.”

▲싱커가 아니고 체인지업이다.
조웅천이 던지는 공은 아무 의심 없이 싱커로 받아들여졌다. 홈 플레이트에서 오른쪽으로 휘는 궤적이 영락없이 싱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웅천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던지는 공이 싱커였다면 지금까지 야구를 못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팔을 역방향으로 틀어야 하는 싱커는 몸에 부담이 되는 공이기 때문이다. 내가 던지는 공은 일명 OK볼로 불리기도 하는 서클 체인지업이다. 체인지업은 팔에 부담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싱커처럼 쓸 수 있는데 부담은 적으니 내게 큰 힘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가끔 후배 선수들이 많이 물어오기도 한다. 삼성 권오준도 내게 와서 어떻게 던지는 지 물은 적이 있다. 권오준도 싱커가 아닌 OK볼을 익힌 것 같다. 자기 나름대로 그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며 개발하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변화구는 힘 빼고 던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장수 비결
불펜 투수와 혹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출장 빈도수가 높다보니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조웅천의 롱런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많이 또 자주 던지면서 이토록 오랫동안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프로야구판에서 부상은 곧 끝을 의미한다. 젊은 후배들에게 늘 해주는 얘기다. 우리팀을 보자 이승호 엄정욱 등은 좋은 공을 갖고 에이스로 대접받았지만 지금 이 자리엔 없다. 아프니까 사라진거다. 트레이너들한테 여러 가지 요구를 하고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보면 내 몸에 맞는 방식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잘 맞는 부분을 키워가고 안 맞는 부분에 대해서는 트레이너와 상담을 통해 바꿔가야 한다.”

그는 투구수에 대해서도 확실한 개념을 갖고 있었다. 경기에 나선 뒤의 투구수가 아니었다. 출장이 잦은 만큼 소모적인 던지기는 지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팔은 많이 던지다 보면 소비한 만큼 약해지게 돼 있다. 그래서 보강 훈련에 많은 힘을 쏟았다. 보강 훈련을 많이 해 둔 것이 도움이 된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쓸데없이 공 던지는 횟수를 줄이는 일이다. 불펜 투수가 많은 공을 던지는 것은 숙명이다. 많이 던지면 그만큼 힘 떨어지는 것도 빨라질 수 밖에 없다.
 
 불펜에서 던진 개수. 연습때 캐치볼 할때 개수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어야 한다. 간혹 불펜에서 몸 풀기 전에 롱 토스를 하는 팀이나 선수들이 있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깨를 빨리 풀 수 있도록 몸 상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투수들을 보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불펜에서 공을 많이 던지는 경향이 있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다면 이런 쓸데없는 소모를 막을 수 있다. SK의 경우 원정을 가면 두 번째 날 투수 웨이트 트레이닝이 잡혀 있다. 이럴때 한번 세게 훈련하고 다른날은 쉬는 것 보다 매일 조금씩 훈련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몸을 빨리 풀 수 있으면 팀에도 도움이 된다. 경기가 갑자기 긴박하게 돌아가면 충분한 준비를 못하고 올라갈 때도 있다. 그럴때에도 좋은 공을 던지려면 빠르게 정상 컨디션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

조웅천은 이어 감독과의 활발한 커뮤니케니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몸이 좋지 않으면 과감하게 말할 수 있어야 팀과 개인에게 모두 도움이 된다는 의미였다.

“선수들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문화도 형성됐으면 좋겠다. 아프지는 않지만 몸이 무거운 날이 있다. 그럴땐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분위기상 쉽지 않지만 그런 분위기가 조성돼야 모두에게 이롭다.
 
 핵심 불펜 요원들은 워낙 많이 나오다보니 상대 타자의 눈에 익을 수 밖에 없다. 공에 힘이 없으면 중요할 때 더 크게 실수할 수 있다. 최근 우리팀엔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나름대로 정착이 돼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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