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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 수를 확보하지 못해 감사를 선임 못 하는 상장사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전임자가 계속 감사 업무를 맡으면 되기 때문에 감사 공백 사태는 빚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다 ‘직업이 감사’인 경우가 잇달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감사 재직기간이 늘어지면 회사와 유착하는 일이 발생해 독립적인 감사 업무가 가능할지 우려가 뒤따른다.
덩치 큰 ‘상근감사 선임’ 연이어 불발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올해 들어 이날(오후 6시 기준)까지 정기주주총회를 연 상장회사 가운데 GS리테일을 비롯해 디에이치피코리아, 진양산업, 연이정보통신, 씨유메디칼 등 15곳이 주주 의결정족수를 확보하지 못해 감사선임안을 승인하지 못했다.
새 감사 없으면 옛 감사로 갈음
현행 상장규정상 상장사 자격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감사 1명을 둬야 하는데 신규 감사 선임안이 주총을 통과하지 못하면 상법 415조에 따라 현행 감사는 후임 감사가 정해질 때까지 역할을 계속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상장사들은 기존 감사에게 직을 맡겨 상장회사 자격을 유지하는 고육지책을 택하게 되는 셈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에 따라 감사(위원)를 선임하지 못하면 관리종목에 지정되고 1년 내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되지만, 이마저도 주총을 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경우 예외다. △전자투표제도 도입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기관투자자 등에 대한 의결권행사 요청 △그 밖에 주주총회 성립을 위한 조치 등을 했을 경우 상장폐지까지 가진 않는다.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이 2017년 폐지되고 지배주주 의결권을 3% 이상 행사할 수 없는 ‘3%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감사선임을 못하는 경우를 배려하자는 차원이다.
주주총회 준비를 담당해온 상장사 관계자는 “의결 정족수에 필요한 주주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며 “정책을 따라 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는 것이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사 기능 퇴행하는 모순”
극단적으로 가정해보면 현직 감사는 ‘사망하거나 실종’하지 않는 이상 감사직을 계속할 수 있는 조건이다. 섀도보팅을 폐지하고 3% 규정으로 상장사를 묶었더니, 뜻밖에도 감사직이 종신직으로 굳어지게 된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오랜 기간 감사직을 수행하다 보면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회사 감사 업무를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재직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회사와 유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국민연금은 투자한 상장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사외이사가 연임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이번에 오르비텍 비상근 감사 임기를 남겨두고 사임 의사를 밝혔던 이상복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임 감사에게 신임 감사가 정해질 때까지 감사직을 맡도록 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 않는 제도”라며 “감사 선임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직을 맡기 꺼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회사를 감시하는 기능이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