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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거대한 연이 떴다. 차갑고 도도한 잎을 펼쳤다. 제자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길 잃은 물방울이 그 결을 따라 미끄러지는 중이다. 파열음을 내며 찢기듯 흩어지고 있다.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만든 경이로운 장면. 연잎의 파리한 실핏줄까지 살려 박을 정도로 섬세하고 진지하다.
하지만 이보다 강렬한 건 색이다. ‘푸르다’ ‘파랗다’로 퉁치고 끝낼 색감이 아닌 거다. 바닥을 받친 검푸른 바다색 배경에, 애써 암운을 감추지 않은 시퍼런 잎을 띄우고, 여명에나 볼 법한 진한 하늘색 그림자까지 드리웠으니. 세상의 온갖 푸름을 다 모아 정작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신비하고 묘한 ‘블루’를 만들었다고 할까.
4월 25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슈페리어갤러리서 김선영·신형록과 여는 3인 기획전 ‘오늘부터 갤러리에 자연이 옵니다’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오일. 130×130㎝. 작가 소장. 슈페리어갤러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