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수백년 버틴 고택의 기품, 신록 속 풍경이 되다

충남 아산 초여름 여행
100년 묵은 소나무 숲길 '봉곡사 소나무 숲길'
외암마을서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건재고택'
충남 최초의 서양식 성당 '공세리 성당'
  • 등록 2019-06-14 오전 5:30:00

    수정 2019-06-14 오전 5:30:00

송악면 유곡리에 자리한 봉곡사로 오르는 길은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로 이름나 있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오래된 절집 들머리엔 대개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길이 있다. 숲길을 걸어 오르는 동안 세속의 때를 조금이나마 씻어내라는 뜻일까. 수십 수백 년을 함께 서서 숲을 이루고 있는 아름드리 전나무·소나무·참나무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마음속까지 씻길 것 같은, 크고 깊고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 숲길들이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신라 때 창건했다는 고찰 봉곡사로 오르는 아름다운 소나무숲 길로 간다. 아산과 예산 대술면, 공주 유구면이 만나는 자리에 솟은 봉수산 자락에 들어서 있다. 백 년 안팎씩 묵은 큼직한 소나무들이 맑고 시원한 솔바람을 내어 뿜는 700m가량의 산길이다.

봉곡사 천년비솔길


◇넉넉한 품에 잠시 안겨 쉬어가는 길

봉곡사 만공탑
소나무 숲길은 오른쪽에 조그마한 골짜기를 거느리고 오른다. 실낱같은 이 물줄기는 유곡천을 이뤄 마을을 지나 송악 저수지로 흘러든다. 길은 완만한데, 걸을수록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 길바닥이다. 굽이쳐 올라간 소나무숲길은 매우 아름답지만, 아스팔트로 포장돼 있어 운치를 떨어뜨린다. 스님들을 위해 포장했다지만, 길의 정취는 절반 이상 잃어버린 꼴이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소나무들에서 이상한 표시들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 소나무들의 밑동에 ‘V(브이)’자 모양의 흠집이 새겨져 있다. 일제가 2차대전 당시 비행기 연료 등을 만들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다. 이런 흔적은 이곳뿐 아니라 안면도 등 곳곳의 소나무숲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가 이 땅에 남긴 또 다른 상처인 셈이다.

소나무 숲길 끝자락에, 대나무숲에 기대앉은 봉곡사가 있다. 봉곡사는 산비탈에 돌축대를 쌓고 지은 아담한 절이다. 신라 시대 진성여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는데, 고려 땐 석암사로 불렸다. 조선 말기 고승 만공 스님이 도를 깨우친 절이라고 한다. 이를 기리는 만공탑이 있다. 경내 한쪽엔 꿈에서 계시를 받은 뒤 땅에서 캐냈다는 부처 모습의 돌에 얼굴 상을 새겨놓은 커다란 돌들을 모아놓았다. 석축 아래엔 까치집을 머리에 인 200살이 넘은 은행나무와 더 오래된 듯한, 텅 빈 나무 밑동에 새들이 세들어 사는 고목이 절을 지켜보고 서 있다. 절 앞엔 관리되지 않는 듯한 작은 연못도 두 곳 있다. 봉곡사에는 이렇다 할 문화재는 없다. 다만 대웅전과 창고로 쓰던 고방 건물은 문화재자료로 지정돼 있다.

절 앞의 갈림길에서 산길로 2㎞쯤 오르면 봉수산 정상(534m)이다. 꼭대기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봉수산(鳳首山)이다. 산의 형세가 남북으로 날개를 펼친 채 동쪽으로 날아가는 봉황새의 모습이라 한다. 꼭대기엔 베틀을 닮은 베틀바위가 있다. 옛날 전쟁이 났을 때 주민이 이 돌 밑으로 피신해 베를 짰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충남 아산 외암마을에 있는 건재고택은 외암마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곳 ‘건재고택’

충남 아산 외암마을에 있는 건재고택은 외암마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이 정원에 있는 수백 년 묵은 소나무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가지를 크게 휘어 자라고 있다.
외암마을은 아산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다. 안동 하회마을, 제주 성읍마을처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마을을 찾은 진짜 이유는 ‘건재고택’ 때문. 조선 숙종 때 문신 외암 이간(1677~1727) 선생이 태어난 집을 건재 이상익(1848~1897)이 고종 6년(1869)에 지금 모습으로 개축했다. 문간채·사랑채·안채가 있고, 안채의 오른쪽에 나무광·왼쪽에 곳간채·안채 뒤편 오른쪽에는 가묘를 배치했다. 안채와 사랑채는 ‘ㄱ’자형 집으로 마주해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 앞은 넓은 마당으로 연못과 정자 등으로 꾸민 정원이 있다.

건재고택은 외암마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졌다. 그런데 아는 이가 드물었다. 그동안 건재고택의 솟을대문이 꼭꼭 잠겨 있어서다. 짐작하듯이 여기에는 파란만장한 사연이 있다. 고택의 주인은 뜻밖에도 현재 아산시다. 지난 3월 열린 경매에서 36억원에 낙찰받았다. 이전 주인은 예금보험공사였다. 고택을 지키던 후손이 이 집을 담보로 수십억 원을 빌렸다 갚지 못해 남의 소유로 넘어가서다. 당시 건재고택 소유권을 넘겨받은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 현재 그는 불법대출로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횡령 혐의로 8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김 회장과 외암마을은 인연이 깊다. 과거 김 회장의 아버지가 외암마을에서 소작했다. 그런 외암마을에서 김 회장이 건재고택을 손에 넣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주인이 누구였든 건재고택은 여전히 이름처럼 ‘건재’하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감동이다. 정원은 진초록의 이끼와 기기묘묘한 나무들로 가득하다. 사랑채 앞에서 자라는 수백 년 묵은 소나무 두 그루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다. 가지를 크게 휘어 자라는 두 그루의 소나무에서는 용 두마리가 연상된다. 정원 여기저기 배치한 괴석들도 기이하다. 처마의 현판은 물론이고 사랑채 기둥마다 추사를 비롯한 옛사람의 글씨를 볼 수 있다.

드비즈 신부가 설계한 공세리 성당은 충남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다.


◇충남 최초의 서양식 성당 ‘공세리 성당’

드비즈 신부가 설계한 공세리 성당은 충남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다.
공세리 성당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공세리 성당은 1922년 건립한 충남 최초의 서양식 성당 건축물이다. 성당이 서 있는 자리는 한때 아산·서산·한산을 비롯해 멀리 청주·옥천 등 40여개 고을로부터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보관하던 공세창고가 있던 곳이다. 공세리 성당은 착공 1년 만에 완공했지만, 땅을 사서 성당을 짓기까지의 기간을 합산하면 20년이 넘는다.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에밀 드비즈 신부가 1903년 국유지였던 성당 부지를 사들인 것이 첫 단추였다. 드비즈 신부는 ‘이명래 고약’을 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성당은 ‘드비즈 신부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계획을 세우고 비용을 마련한 것도 그렇지만, 프랑스의 이름난 건축가 아버지를 둔 드비즈 신부는 성당을 직접 설계하고 감리·감독까지 했으니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처음 지어졌을 때 공세리 성당은 지금보다 더 소박했다. 크기도 지금의 절반 이하였다. 한국전쟁 중에 인민군에게 점거당해 공회당으로 쓰이기도 했던 성당은 1970년 신자가 증가하자 북측의 제대 쪽을 헐어내고 317㎡(96평)를 증축해 495㎡(150평)로 늘려 오늘에 이른다.

공세리 성당은 천주교 초기 순교성당이라는 종교적 가치도 훌륭하지만, 소박한 정신과 우아한 건축적 미감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단정한 아름다움도 뛰어나다. 언덕 입구에서 자라는 수령 300년이 넘는 늙은 느티나무와 언덕 위의 붉은 벽돌 성당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공세리 성당은 인근 당진의 솔뫼성지와 신리성지, 예산의 여서울성지, 홍성의 홍주성지, 서산의 해미성지와 함께 천주교 순례길의 성지다. 공세리 성당에서 솔뫼성지를 잇는 길이 천주교 순례길을 여는 ‘첫 구간’이다.

충남 아산 송악면 유곡리에 자리한 봉곡사로 오르는 길은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로 이름나 있다.


◇여행메모

△가는길=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를 타고 천안나들목을 나가 1번 국도와 21번 국도를 번갈아 타고 아산으로 간다. 서해안고속도를 타고 서평택나들목에서 나가 아산호 건너 39번 국도 따라가도 된다. 외암리는 아산 시내에서 39번 국도를 타고 가면 나온다. 봉곡사는 외암마을 지나 공주·유곡 쪽으로 11㎞쯤 가면 대술·유곡 쪽으로 갈리는 삼거리를 만난다. 616번 지방도 쪽으로 우회전해 900m쯤 가서 봉곡사 팻말 보고 좌회전해 1㎞를 들어가면 마을 끝 주차장에 닿는다.

◇잠잘곳= 아산은 숙소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온양온천·도고온천·아산온천에다 충무온천까지 더하면 아산의 온천은 4곳. 여행 일정에 온천욕을 끼워 넣는 게 좋겠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객에게는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를 추천한다. 가족형 종합 스파 시설로, 실내 바데풀부터 실외 유수풀 등 다양한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국내 최대 규모의 카라반 캠핑장도 있다. 스탠다드(4인) 카라반 30대와 디럭스(4인) 카라반 20대 등 모두 50대 카라반을 보유하고 있다. 가성비를 따진다면 최근에 재개장한 글로리콘도 도고도 괜찮은 선택이다. 2인 기준 16평 객실과 조식, 천연 온천 사우나, 수영장, 아메리카노까지 포함한 가격이 10만원대 초반이다. 곡교천에는 야영장도 있다. 곡교천을 따라 4㎞ 남짓 이어진 은행나무 숲길을 끼고 있다. 67곳의 야영 면이 있고 개수대·화장실·샤워장은 물론이고 야간조명시설 등도 갖추고 있다. 온양민속박물관·현충사 등이 차로 10분 거리다.

온양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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