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낙지 北오징어]김정은에게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느냐" 묻는다면

  • 등록 2019-01-13 오전 7:00:00

    수정 2019-01-13 오전 10:02:42

[편집자주] 남한에서 낙지라고 부르는 그것을 북쪽에서는 오징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북한에서 낙지라고 부르는 그것을 우리는 오징어라고 말하죠.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남북이 분단 이후 제한적 교류 속에 서로 다른 언어 체계를 갖다보니 벌어진 씁쓸한 현실입니다.

분단 이후 70년 가까이를 따로 살면서 같은 대상을 다르게 말하는 것이 비단 낙지와 오징어 뿐일까요. 남북이 서로에게 가질 수 있는 사소한 오해만이라도 풀어보고자 북한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중 영상을 편집한 약 49분량의 기록영화를 방영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귀환 길에 경유한 단둥((丹東) 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내는 친필 감사 서한을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 전달하는 장면.(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신년을 맞아 남북 지도자가 2019년 정부의 지침을 제시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늘 그렇듯 1월1일 신년사를 발표해 남측 통일부 기자들에게 ‘신정’을 앗아갔지요.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일 취임 이후 두 번째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국정 3년째를 맞는 청사진을 꺼냈습니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때는 엉뚱한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바로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느냐”는 질문 태도가 논란이 됐는데요, 그 질문의 깊이는 차치하고,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 모습이 눈꼴 시렸겠지만 문 대통령을 비토하는 세력에서는 그 공격적인 질문이 비호할만 했을 겁니다. 요는, 태도는 정쟁의 대상이 될 뿐이란 거죠.

독재자에게 “당신은 독재자가 아닌가요?”라고 질문한 기자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에게는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을 비호한 사실을 알고서도 그를 “돼지 같은”이라고 수식하며 면전에서 비꼬았습니다. 그 때 카다피가 지었을 표정은 우리가 그를 조망하는 한 근거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기자회견을 지켜본 기자도 그 ‘무례한(이라 여겨지는)’ 질문 때 문 대통령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때로는 질문에 대한 답보다 질문에 반응하는 태도가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첫 세 번의 답변을 하는 동안 두 차례나 한숨을 쉬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독자가 있을까요?

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을 ‘위원장’이라는 호칭없이 여러 차례 “김정은”이라고도 했습니다. 2018년 첫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도 북한이라고만 지칭하던 문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면 개인적으로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사이가 그 만큼 돈독해졌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때로는 ‘계급장 뗀’ 질문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김 위원장의 신년사와 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지켜보면 두 지도자의 대화 방식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질의응답’입니다. 두 지도자 모두 30여분간 ‘정견 발표’의 시간을 가졌지만, 김 위원장과 다르게 문 대통령은 86분이나 질문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80분으로 예고했던 질답 시간을 문 대통령이 임의로 늘여 진행했음에도 현장에서 손을 든 기자는 줄지 않았습니다.

90여분을 추가 질문을 하고도 국정 철학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30분에 불과한 김 위원장의 신년사만을 듣고 이를 분석해야 하는 북한학 석학들이나, 이들의 분석을 포함해 기사화시켜야 하는 통일부 출입 기자들의 고충도 간접적으로마나 이해가 되실 겁니다.

김 위원장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김 위원장이 그에 대한 답을 했다면? 설령 ‘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겠다’고만 해도 그 자체로 기사화될 가치는 충분할 겁니다. 김 위원장은 그간 자신의 생각을 말해오기만 했지 누군가의 질문을 받아 대답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야경 시찰을 나섰을 때도 김 위원장은 자신을 알아보는 인파에는 손을 흔들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전술한 팔라치는 중국의 지도자 덩사오핑과 인터뷰를 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아마도 북한 지도자와의 인터뷰도 원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자가 접한 북측 고위급 인사들은 ‘질문’에 인색합니다. 지난 6월 싱가포르 북중 정상회담 이후 국내 매체가 김 위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북측은 그저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기자가 직접 만났던 북측 고위급 인사들 중에서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만이 “다음에 합시다” 정도의 대꾸(?)를 해줬을 뿐,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질문 자체를 안 듣는 식으로 일관했습니다.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이라고 해놓고도 후일 남측 취재진의 질문을 회피한 그입니다. 최선희, 최강일, 김성혜 등등이야 말해야 무엇할까요.

그런데 최근 김 위원장의 2019년 첫 방중과 관련해 재미있는 리포트를 접했습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의 분석이었는데요, 중국 언론이 이제는 김 위원장의 방중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죠. 신화통신이나 CCTV 모두 김 위원장의 네 번째 방중은 크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만큼 양국 관계가 돈독해졌다는 해석이었죠.

북한은 어땠을까요? 당연하게도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이 늘 1면이었습니다. 흡사 1980년대 ‘땡전뉴스’를 방불케하죠. 그들 입장에서는 김 위원장의 방중을 서너번째 뉴스로 전하는 중국의 언론이 예의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예의라는 건 불변의 가치는 아니니까요.

돌고돌아 우리에게 팔라치 같은 기자가 있어서 김정은 위원장과 독대할 기회가 생겼다면 어떨까요? 영화 ‘공작’의 흑금성(황정민 분)처럼요. 그가 김 위원장에게 “당신은 독재자가 아닙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를 예의가 없다고 비판할까요? 그 때 ‘김정은’은 무어라고 답할지 그의 입을 주목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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