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먼 타계(상보)

  • 등록 2006-11-17 오전 5:10:32

    수정 2006-11-17 오전 10:34:40

[뉴욕=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 중 한 명이자 `통화주의의 대부`인 밀튼 프리드먼 교수가 사망했다.

주요 외신들은 16일(현지시간) 프리드먼 교수가 지병인 심장병 때문에 향년 94세를 일기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프리드먼 교수(사진 좌)는 20세기의 아메리칸 드림이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191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우크라이나 출신의 가난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뜩이나 빈곤한 가정 형편은 더욱 나빠졌고 때문에 그는 장학생으로 인근 뉴저지의 럿거스 대학에 입학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학부를 졸업한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석사 학위,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5년부터 10년간 미국 재무부, 국립자원위원회 등에서 근무했고 1946년 시카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약 30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프리드먼은 시카고 대학 재직 동안 자유주의 시장 경제를 신봉하는 시카고 학파의 대부로 군림하며 쟁쟁한 경제학자들을 길러냈다. 거시 경제, 미시 경제, 경제사, 통계학 등 경제학 전 분야에 걸쳐 수 십권의 유명 저서를 남긴 프리드먼은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프리드먼은 1977년 당시 경제학계의 떠오르는 샛별 로버트 루카스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시카고 대학을 떠났다. 이후 스탠포드 대학의 후버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렀다.

프리드먼은 철저하게 정부 개입을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를 신봉한 인물이다. 그는 1930년대 뉴딜 정책 이후 미국 경제 정책을 지배해 온 전통적 케인즈 경제학에 반하는 통화주의(Monetarism)를 제창해 세계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통화주의는 화폐 가치 안정을 경제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는 이론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그의 이론은 1970년대 이후 세계 경제학계를 지배했다.

때문에 프리드먼에게는 `흔들림 없는 자유주의자`, `자유경쟁체제의 굳건한 옹호자`, `통화주의의 대부`, `작은 정부론의 기수` `반(反) 케인즈 학파의 창시자` 등 다양한 이름이 따라다닌다. 일각에서는 그를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와 마거릿 대처 정권의 이념적 스승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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