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집이 사람으로 보일 땐…그려야지"

서양화가 김명식 선화랑서 초대전
"성냥갑같은 집 문득 사람얼굴처럼 보여"
13년째 인종오버랩한 집 그림 연작 발표
"행·불행 시작점인 집이 화목·화합" 전해
나이프로 색채 미학 다진 신작 40여점
  • 등록 2017-05-15 오전 12:12:00

    수정 2017-05-15 오전 12:12:00

서양화가 김명식이 전시작 중 가장 마음에 든다는 작품 옆에 섰다. 붉은 바탕이 강렬한 100호짜리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17-MP01’(2017)이다(사진=오현주 선임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미국 뉴욕에 머물던 2004년. 슬럼프에 빠져 힘겹던 어느 날 전철을 타고 가면서 허망하게 밖을 내다보고 있던 그때였다. 창문을 통해 비친 작은 집들이 훅 다가왔다. 마치 사람 얼굴처럼 느껴지더라.”

연작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East Side Story)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성냥갑같이 저 멀리 보이던 집의 지붕은 사람의 머리처럼 보였고 창문은 눈, 출입문은 입처럼 보였다. 짙은 색의 집은 흑인, 하얀색은 백인, 노르스름한 갈색은 동양인인 듯. 색뿐인가. 크고 작은 생김새는 표정이 됐고 감정이 됐다.

김명식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17-GN02’(2017)(사진=선화랑)


1990년대 서울 강동구 고덕동을 배경으로 한 ‘고데기’ 연작’에 이어 2004년 그날부터 지금껏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연작을 이어오고 있는 서양화가 김명식(68)이 초대전을 열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집중적으로 작업한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시리즈 40여점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 걸었다. 6호 안팎의 아기자기한 소품부터 100호, 200호 대작도 여러 점이다. ‘이스트 사이드’는 미국 맨해튼 동쪽을 말한다.

김 화백 작품세계의 특징을 굳이 꼽으라면 ‘색채’와 ‘나이프’다. 광활한 면 위에 규격 없이 꾸린 구성은 작가의 주조색인 회청색을 비롯해 파랑·초록·빨강·노랑 등 원색에 가까운 색을 입으면서 절정에 달한다. 붓 대신 주로 쓰는 페인팅 나이프는 평면회화에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거칠게 입힌 질감이 도드라져 진한 밀도를 빚어낸 덕이다.

김명식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16-Spring’(2016)(사진=선화랑)


사람 생김새가 그렇듯 집이라고 다 같은 모양은 아니다. 회청색이 많이 들어간 그림 속 집은 여러 채가 서 있어도 하나처럼 외로워 보인다. 동양화인 양 온통 여백뿐인 하늘에 달까지 걸리면 가슴을 저리게 하는 쓸쓸함까지 풍긴다. 김 화백 스스로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다른 그림 모르게 살짝 찍어준, 붉은 바탕의 100호짜리에선 색색의 집들이 내뿜는 발랄한 에너지가 먼저 잡힌다. 그럼에도 단조로울 틈조차 주지 않는 각양각색의 집 구경은 거리의 사람 구경 못지않다.

김명식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B01’(2016)(사진=선화랑)


“집이란 게 행복 혹은 불행의 시작점이 아니던가. 굳이 메시지를 찾자면 화목·화합을 이루자는 거다. 인종 간의 갈등도 잊고 이웃 간의 싸움도 잊고.” 김 화백의 뜻대로라면 사람이 나서야 할 일을 애꿎은 집에 다 떠넘기자는 건데. 이처럼 평화로운 권력 이양이라면 마다할 일이 없겠다 싶다. 그만큼 그의 집은 다정하고 다감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두 해 전 동아대에서 정년퇴임하고 얼마 전부터 경기 용인에 작업실을 겸한 새 ‘집’을 마련했다. 도롱뇽이 꿈틀대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는 청정지역이 그는 꽤 마음에 드나 보다. 이번 전시작에는 자신감 넘치는 대담한 ‘나이프질’, 청량한 느낌을 뿌리는 초록이 늘었다. 자연주의 그 자체다. 전시는 23일까지.

김명식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16-F01’(2016)(사진=선화랑)
자신의 작품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17-MA07’(2017) 옆에 선 김명식 화백. 전시작 중 가장 큰 200호(259.1×193.9㎝) 사이즈다(사진=오현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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