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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공론화 하고 “통계적 의미 못 찾아”
김영란 공론화위원장은 지난 3일 “공론화 의제에 대한 지지도조사 결과 1안과 2안이 각각 1위(52.5%)·2위(48.1%)였으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고 했다. ‘정시 수능위주전형으로 45% 이상 선발하자’는 1안과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을 골자로 한 2안이 주로 시민참여단의 지지를 받았지만,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보였다는 해석이다.
사실 대입전형에서 수능을 중시해야 한다는 ‘수능파’와 수능 영향력을 줄이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강화해야 한다는 ‘학종파’ 간 첨예한 대립은 굳이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확인 가능했던 여론지형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대입개편안 결정을 국가교육회의에 떠넘기고 국가교육회의는 공론화위에 이를 맡기면서 혼란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5월부터 시작한 대입개편 공론화 과정에는 예산 20억원이 투입됐다.
대입개편의 특성상 시민참여형 공론화로 정하기에는 처음부터 무리가 따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공론화를 거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문제는 건설재개·중단 등 비교적 선택이 단순한 의제였다. 하지만 대입전형은 △수시·정시 선발비율 △수능 평가방법 △수능최저학력기준 등 복잡한 함수관계를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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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자녀를 둔 임성철(50)씨는 “미래의 대입개편은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지 국가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인데 이를 공론화에 맡긴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교육부가 백년지대계를 세운다는 가치로 이번 대입개편에 접근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도 “신고리 원전 결정에 비해 대입제도 개편 결정은 훨씬 더 복잡한 의제”라며 “490명의 시민참여단에게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고 하지만 생업으로 바쁜 시민참여단이 사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대입개편 공론화 결과가 ‘수능파’와 ‘학종파’간 첨예한 대립만 확인하는 차원에 그치면서 교육부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대입제도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개편안 골자인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결정을 유예했다. 결국 1년 뒤 내놓은 개편안의 윤곽은 쟁점별 지지도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임진택 경희대 책임입학사정관은 “과정은 공정한 실험이었을지 몰라도 결과는 지난해 8월 연기할 당시의 대입 여론을 재확인하는 수준”이라며 “많은 시간과 예산을 들여 뭐했나하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치원영어·학생부도 공론화 “무책임하다” 지적도
교육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미룬 것은 대입정책 뿐이 아니다. 올해 초에는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정책을 3주 만에 뒤집으면서 논란을 초래했다.
민감한 교육문제를 잇따라 정책숙려제와 공론화로 결정하려는 교육부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부모 김정현(44)씨는 “대입개편의 경우 1년 전 수능절대평가로의 전환이 미래 교육에 부합한다고 생각했으면 밀어붙였어야 했다”며 “결국 교육부의 결정 장애가 교육계 혼란만 부추긴 꼴”이라고 지적했다. 임진택 책임입학사정관도 “교육부가 대입에 대한 원칙과 가치 지향을 분명히 한 뒤 대입개편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