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점 도깨비들이 묻는다 "네 꿈이 뭐냐"

조각가 김성복 '도깨비의 꿈' 전
남녀노소 100명 꿈 묻고들어 빚어낸
1200점 나무조각 '도깨비의 꿈'부터
2m 오뚝이방망이, PVC방망이까지
끊임없이 달려나가는 현대인 응원
사비나미술관 안국동 20년 마감전
  • 등록 2018-03-12 오전 12:12:01

    수정 2018-03-14 오후 6:19:31

김성복의 ‘도깨비의 꿈’(2017). 유치원생부터 여든 어르신까지 100여명에게 묻고 들은 꿈이다. 10㎝ 남짓, 1200점 정도 되는 나무조각으로 만들어 지름 4m쯤 되는 둥근 원 안에 모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현실은 언제나 힘들고 쓸쓸하다고 말했다.” 맞다. 그랬다.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면 그저 덜 힘들고 덜 쓸쓸할 때일 뿐. 자신있게 이 상황을 부정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런데 여기 “반드시 그렇진 않을 걸”이라며 딴죽을 거는 이들이 있다. 그저 당신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내가 현실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어서 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좋다. 가보기로 한다. 언감생심, 감히 마음으로도 품지 못하던 희망이란 걸 준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말이다. 그들의 신분이 좀 애매하다. 엄밀히 말해 사람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방망이를 들고 떼로 나타나 ‘뚝딱뚝딱’ 해대며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그뿐인가. 금수저 아니면 흙수저, 두 갈래뿐인 세상에 ‘꿈수저’를 들이대고 뭐든 건져보라고 한다. 그래, 드디어 찾아왔나 보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동화에서나 봤던 도깨비세상이구나.

조각가 김성복(54·성신여대 조소과 교수)은 도깨비세상에 산다. 그 사정이 단순치 않다. 밖으로는 도깨비방망이를 탐하기 위해서고, 안으로는 도깨비와 도깨비방망이로 끌어온 세상을 변론하고 대변하기 위해서다. 도깨비의 아버지, 아니 도깨비방망이의 제작자라고나 할까.

김성복의 ‘도깨비정원’. PVC로 만든 수백 점의 방망이 풍선을 들여 꾸몄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런 그가 이번에 꾸민 도깨비세상은 세상은 조금 더 절박하다. 꿈조차 못 꾸는 이 시대 모든 도깨비를 위해 벌인 ‘꿈’판이니까.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 전관을 입체·설치작품으로 채운 ‘도깨비의 꿈’ 전이다. 1500여점을 세우고 또 매달았다.

△도깨비 봤다 방망이 뺐다

전통적인 조각작업이 그새 30년이다. 화강석, 브론즈 등 두툼하고 묵직한 재료가 이제 손에 착착 붙을 정도다. 그런데 뒤늦게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소재를 한번 바꿔보자고 한 거다. 결이 있는 나무를 다듬고, 물컹한 PVC에 바람을 넣고, 매끈한 스테인레스스틸에 광택을 더했다. 소재선정의 이유는 하나다. 이들로 과연 희망을 빚을 수 있겠나 없겠나.

그 가운데 압도적으로 시선을 잡는 건 ‘도깨비의 꿈’(2017)이란 작품. 10㎝ 남짓, 1200점 정도 되는 나무조각을 지름 4m쯤 되는 둥근 원 안에 모았다. 하나하나 다듬고 하나하나 색을 입혀 규칙없이 늘어놓은 군집조각상이다. 멀리서 보면 ‘만다라’의 형상처럼도 보인다. 우주법리를 담은 원형의 불화 말이다. 도깨비 아니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이의 꿈을 모아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김성복의 ‘도깨비의 꿈’(2017). 10㎝ 남짓, 1200점 정도 되는 나무조각을 지름 4m쯤 되는 둥근 원 안에 모았다. 멀리서 보면 우주법리를 담은 원형의 불화 ‘만다라’처럼 보인다(사진=사비나미술관).
김성복의 ‘도깨비의 꿈’(2017)을 눈높이에서 들여다봤다(사진=사비나미술관).


이 거대한 작품을 만든 배경도 남다르다. 처음에는 작가 자신이 도깨비라고 여기고 스스로에게 물었단다. “내 꿈이 뭔가.” 그런데 꿈을 고안하는 데도 한계가 있더란다. 그래서 거리로 나갔다. 유치원생부터 여든 살 어르신까지 100여명을 붙들고 물으며 다녔다. “당신 꿈이 무엇입니까.”

꼬마들에겐 그림으로 받고 어르신에겐 이야기로 들었다. 메달, 복주머니, 자동차, 뽀로로, 요슬램프, 애완견, 바게트 담은 빵바구니, 구두, 돼지, 아이스크림, 곰, 집, 축구공, 지폐다발 등. 상상의 물건부터 당장의 소망까지, 누구에게는 딱히 꿈이랄 것도 없는 소소한 ‘소원덩어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작가가 생각을 보탰다. “아름다울 수도, 비극적일 수도 있겠지만” 꿈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냐고, “이루는 게 아니라 그저 지니고 있어야 하는” 일상을 얼기설기 모은 삶덩어리가 아니냐고.

‘도깨비의 꿈’ 속을 헤매다 빠져나오면 이번엔 지독한 딜레마에 놓인다. ‘바람은 불어도 가야 한다’는. 시리즈로 제작한 ‘바람은…’은 넓은 보폭으로 전진하는 듯 열심히 달리는 남성상을 따온 작품이다. 20∼30㎝쯤 되는 스테인레스스틸 줄에 납작하게 누른 은색모형 수백개를 하늘하늘 벽에 달아 설치한 ‘바람은…’(2018)을 지나면, 우레탄도장을 한 뒤 단단한 입체로 만들어 붙이고 세운 씩씩한 ‘바람은…’(2017)이 기다린다. 이처럼 명확한 주제가 또 있을까. 그저 앞으로 앞으로 끊임없이 달려나가는 현대인을 응원하는 목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니.

조각가 김성복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 펼친 ‘도깨비의 꿈’ 전에서 자신의 작품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2018) 옆에 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김성복의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2018)의 디테일. 20∼30㎝쯤 되는 스테인레스스틸 줄에 납작하게 누른 은색모형이 수백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김성복의 ‘바람이 불면 가야 한다’(2017). 스테인레스스틸로 만들고 우레탄도장을 해 벽에 붙인 또 다른 버전의 ‘바람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희망도 꿈도 없는 세상에 던진 꿈수저

그런데 왜 하필 도깨비인가. 금수저·흙수저·헬조선, 이런 무시무시한 단어를 보면서 작가는 “꿈이 실현되기 힘든 세상에서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단다. 그러다가 “도깨비라면, 그들의 방망이라면 뭐든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이르렀다는 거다.

그 고민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라면 ‘꿈수저’(2018)와 ‘금 나와라 뚝딱’(2018)이 아닐까 싶다. 도깨비방망이 모형의 손잡이를 절대 땅에 닿지 않게 하면서 마치 놀이기구처럼 까딱까딱 움직이는 길이 187㎝ ‘꿈수저’는 금수저·흙수저에 대한 유쾌한 반항처럼 보인다. 높이 230㎝짜리 도깨비방망이를 재현해 오뚝이처럼 세운 ‘금 나와라…’는 누구도 항거할 수 위압감을 풍겨낼 정도. PVC로 만든 수백 점의 방망이 풍선으로 꾸민 ‘도깨비정원’(2018)은 차라리 그 결정판이라고 할까.

무엇이 됐든 작품에 올린 작가의 메시지는 한 줄이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 또한 당연히 흔들리겠지만 상처받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냥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김성복의 ‘꿈수저’(2018)와 ‘금 나와라 뚝딱’(2018). 수저는 길이 187㎝, 방망이는 높이 230㎝짜리로 제작해 주위를 압도하는 기운이 상당하다. 둘 다 오뚝이처럼 움직이는 조각품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사진=사비나미술관).


△안국동 ‘사비나’서 여는 마지막 전시

‘도깨비의 꿈’ 전을 끝으로 사비나미술관은 20년 안국동시대를 접는다. 오는 7월에 은평구 진관동으로 확장이전해 좀더 장대한 꿈을 펼칠 계획을 전했다. 지하 1층부터 지하 5층 규모로 세울 미술관은 전시뿐만 아니라 연구·소장·아카이브의 역할까지 두루 아우를 거란다. 이 시대 도깨비들의 꿈을, 공간이 가로막아선 안 된다는 생각인가 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안국동 마지막 전시는 의미가 있다. 헬조선에도 도깨비방망이는 있다는 뜻이 아닌가. 이에 적극 동조한 작가는 명쾌한 지론을 얹는다. “삶은 불확실한 것도 있지만 분명한 것도 있다”고. 반드시 살아본 사람만이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법이고, 그래서 감히 “나는 삶을 조각한다”고 말한다고. 슬쩍 홀리기도 하고 방망이도 쥐어주고, 그가 진정한 도깨비가 아닌가 싶다. 전시는 24일까지다.

조각가 김성복. 꿈조차 제대로 못 꾸는 이 세상 모든 이를 대신해 입체·설치작품 1500여점을 들여와 거대한 꿈판을 벌였다. 그러곤 조근조근 이른다. 아름다울 수도 비극적일 수도 있겠지만 꿈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냐고, 이루는 게 아니라 그저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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