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상? 그냥 털려주고 '대신' 얻어내라"

빅데이터 시대 '프라이버시'는 환상
차라리 내주고 혜택 얻는 편이 현명
개인정보 준만큼 기업관리 요구해야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안드레아스 와이겐드|440쪽|사계절
  • 등록 2018-12-12 오전 12:12:02

    수정 2018-12-12 오전 8:46:49

“어차피 털리게 돼 있다. 아무리 보호막을 치고 무장을 해도.” 저자 안드레아스 와이겐드는 빅데이터시대에 ‘프라이버시’란 게 참 순진한 환상이라 말한다. 차라리 다 내주고 기업관리·데이터접근에 대한 권리 등의 대가를 요구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이미지=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해 동안 오매불망 기다려온 블랙프라이데이. 이날을 기다리는 건 쇼핑객만이 아닌가 보다. 별 게 궁금한 이들이 또 있다. ‘쇼핑몰이나 대형마트로 향하는 자동차가 몇 대나 될까’ ‘그날 유통업체의 주가는 어떻게 춤을 출까’ 따위. 움직이는 자동차 수에 따라 유통업체의 주가가 하늘로 뻗치든 땅으로 곤두박질치든 할 거란 계산이다. 좋다. 그런데 말이다. 조건이 있지 않나. 중요한 정보 한 가지는 미리 빼내야 한다는 것. 개인의 ‘위치정보데이터’다. 정보를 얻어내는 입장에선 ‘심 봤다’가 될 거다. 하지만 털리는 사람의 입장은 어떨까.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데이터를 도용당했다’는 여전히 민감한 뉴스다. 신분을 털렸다는 건 나를 복제한 인간이 나돌아다닌다는 얘기니까. 드러내는 동시에 감추는, 양쪽을 교묘히 오가는 이중성에 치명적인 금이 갔다는 소리니까. 해결책은? 사고를 겪은 사람의 조치는 대충 비슷하다. 무조건 ‘닫아버린다’다. 탈퇴하고 내리고 지우고 빼고. 그런데 그런다고 정말 감춰지나.

2010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중대선언을 했다. “프라이버시는 끝났다!” 당시 페이스북 직원이 아닌 이들 중 몇이나 환영을 했을까. ‘당신의 사생활을 지켜 드립니다’라고 홍보를 해도 부족할 판에 뭔 소리를 하는 건지. 그런데 그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페이스북이 어떤 조치를 취한 게 아니다. 시대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거다. 2004년 페이스북이 세상에 나올 때만 해도 개인정보를 인터넷이 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5~6년 뒤 상황은 역전됐다. 나이·직업·주소는 물론 기타 등등의 개인정보를 거리낌 없이 올려대고 있으니.

그로부터 다시 7∼8년 뒤. 물리학자 출신으로 굵직한 데이터기업 등을 거치며 소셜데이터를 연구해온 저자가 아예 ‘포스트 프라이버시 시대’라고 초를 치고 있다.

△아마존·페이스북, 너희가 한 일을 알고 있지만…

프라이버시를 볼모로 한 저자의 분석대상은 글로벌 데이터기업이다. 구글·페이스북을 앞세우고 아마존·에어비앤비·우버 등, 알 만한 그들이 벌이는 데이터 제품, 서비스 변환방식, 각종 실험내용을 거침없이 꺼내놓는다. 보통 상식 수준은 아니다. 저자는 처음부터 이들이 벌이는 행태를 비난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반전의 역설은 이렇다. “그들이 우리를 알수록 우리의 존재감이 커지고, 우리는 자신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가령 아마존의 ‘고객리뷰 정책’을 보자. 아마존은 검열되지 않은 고객의 모든 리뷰를 전격 수용하는 ‘오픈마인드’를 표방하는데. 좋은 제품을 골라내기 위해? 천만에. 별이 1개든 5개든 아마존의 입장에선 전혀 중요치 않다고 했다. 제품 구매를 고민하는 다른 고객이 참고로 삼을 만한가 아닌가만 관심거리일 뿐.

페이스북의 ‘좋아요’에 감춰진 비밀도 슬쩍 귀띔한다. 페이스북이 회원들의 IQ·인종·정치성향·성적지향성 등을 알아내기 위해 론칭한 앱이 있단다. ‘당신의 좋아요가 바로 당신’이란 이름의 앱. 결과는 놀라웠다. ‘좋아요’만으로 그 회원이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를 구분하는 데 88%의 성공률을 보였다는 거다. 딱 두 가지만 제시했을 뿐인데. 뮤지컬 ‘위키드’와 화장품브랜드 ‘맥’에 대한 선호도.

이뿐인가. 개인이 모르는 건 차고 넘친다. 간혹 고객상담센터에서 울려나오는 메시지 “통화내용은 녹음될 수 있습니다”란 것. 하지만 녹음이 잘 됐는지 내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또 내 행동반경을 결정하는 ‘신용등급’이란 게 어찌 결정되는지 알 수가 없고, “알려줘 찾아줘”를 외쳐대느라 수없이 저장했을 음성인공지능데이터 역시 내 입을 떠나면 남의 목소리가 된다.

그러니 저자는 “애쓰지 말라”고 한다. 그냥 다 털려주란 얘기다. 내주고 그 이상을 받는 게 똑똑한 계산법이란 거다. 내 선호와 취향을 박아두면 되레 나에게 최적화한 결과물이 돌아올 수 있지 않느냐는 거다.

△내 정보 쥔 그들이 영업비밀 공개할까

책의 무기는 작정하고 ‘까놓은’ 방대한 사례와 데이터다. 미국 등 몇몇에 한정됐지만 이 구분도 무색하리만큼 대단히 ‘보편적’이다. 우선 실제 사람들의 관심이 프라이버시를 떠나는 중이란 데이터. 구글트렌드의 검색어가 그렇단다. 지난 몇 년간 ‘사이버 폭력’ ‘트렌스젠더’보다 ‘프라이버시’를 검색한 비율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거다.

어차피 승부가 안 되는, 감춘다고 감춰질 수 없는 싸움이란 주장도 데이터로 내놨다. 세계적으로 1억대의 CCTV가 밤낮 없이 누군가를 감시하고 있지만 10억대의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선 기가 죽지 않겠느냐고 했다. 2020년이면 온도·방향·조도까지 1조개의 민감한 센서환경에 둘러싸여 살게 될 거라고. 그러니 적당히 투항하란다.

저자는 빅데이터시대에 프라이버시란 게 참 순진한 환상이란 결론을 재차 확인한다. 환상을 깨는 건, 프라이버시를 다시 정의하는 적극적인 개입이란다. 개인에게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함께 만드는 공동생산자가 될 것”을 제안하는 거다. 전제가 있다. 기업이 개인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듯 개인도 그들을 뚫어지게 들여다볼 방안을 찾는 일. 두 가지 원칙이 필요하단다. 투명성과 주체성이다. 데이터에 접근할 권리, 수정할 권리, 실험할 권리, 이전할 권리 등을 포함해 데이터기업을 관리하는 권리.

그럼에도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는다. 개인정보가 선호와 취향에만 머무는 게 아니니까. 데이터기업의 담은 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으니까. 설사 그 위험을 막아낸다 쳐도, 말이 좋아 공동생산자지 과연 영업비밀을 다 끄집어내는 일에 기업이 동의를 할지. 투명성이니 주체성이니 하는 잣대를 반겨 잡을지. 글쎄다. 게다가 ‘암담한 그림’ 한 점을 보는 듯한 불안감도 지워주질 못했다. 취업이력서에 말이다. 활동하는 소셜미디어를 세세히 기입하고 경력사항으로 ‘좋아요’ 수를 기록하는, 초현실주의 그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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