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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개봉한 류준열·유지태·조우진 주연의 영화 ‘돈’은 이렇게 시작한다. 돈을 벌고 싶어 주식브로커에 뛰어든 조일현(류준열 분)과 작전을 짜는 번호표(유지태 분), 그리고 이들을 쫓는 금융감독원 열혈 수석검사역 한지태(조우진 분)가 주인공이다.
번호표는 돈보다는 ‘재미’를 위해 작전을 벌인다. 번호표는 은밀한 매매 대리인으로 조일현을 활용하면서 스프레드 거래, 공매도, 프로그램매매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공정거래를 자행하고 거액의 시세차익을 가져간다. 금감원 수석검사역인 한지태는 불공정거래 낌새를 눈치채고 백방으로 쫓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영장 있어? 아니면 경찰이랑 같이 오든가.” “경찰도 아니면 앉아서 모니터나 보셔야지….”
공식 개봉 하루전 열린 시사회에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비롯해 장준경 부원장보, 김충우 조사기획국장, 윤동인 특별조사국장, 김영철 자본시장국장 등 자본시장 담당 5인방이 직접 참석한 이유가 이 대사에 압축돼 있다. 금감원은 이번 영화 제작에 자문을 담당했다. 극중 한지철이 쓰는 명함은 실제 금감원 직원들이 사용하는 것과 똑같다. 이 영화를 계기로 특별사법경찰(사법경찰관리·특사경)을 조속히 도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2015년 7월 법 개정을 통해 금감원 특사경 도입이 가능해졌지만, 금융위원장의 지명·추천이 이뤄지지 않아 4년 가까이 미뤄진 상태다. 특사경 도입이 지지부진한 사이 주식시장의 불공정거래는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1988년 증권감독원에 불공정거래 조사전담부서가 설치된 이후 30년간 무려 5000여건의 크고 작은 불공정거래 사건이 발생했다. 연평균 167건 수준이다.
김충우 금감원 조사기획국장은 “우리가 조사해 패스트트랙으로 남부지검에 보내더라도 일이 좀 밀려 있는 상태”라며 “지난해 남부지검에 패스트트랙으로 넘긴 사건 중 절반 가량은 착수도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이 아닐 경우 불공정거래 조사가 마무리되더라도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금융위 자본시장조사심의,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을 절차를 거치는데만 두달이상 소요되는 상황이다.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금감원 관계자는 “극 중에선 검찰에 합동수사단을 꾸려 (특사경 대신) 한지철이 수사를 진행했지만, 현재로선 금감원에서 임의동행이나 통신기록 조회 등은 불가능한 상태”라며 “특사경이 도입되면 불공정거래 초기조사(수사)가 조속히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보다 지능화·첨단화되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예방 혹은 적발하는 데 있어 특사경이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지태가 금감원 특별사법경찰이었다면 조일현을 임의동행해 수사하고, 통신기록 등을 조회해 극중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다수의 조연들을 구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김 국장은 “특사경이 도입되면 불공정거래 행위로부터 수사를 마무리해 기소하는 시간까지 상당히 단축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금감원이 초동조사를 한 만큼 사안의 긴급성을 따져 우선순위를 매겨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사경이 도입되면 현재 적발에서 처벌까지 평균 2년가량 걸리는 기간도 단축될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특사경은 42개 기관에 도입돼 1만70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식약처, 관세청, 서울시,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다양한 기관에서 특사경을 운영중이다.
한편 금융위원장에게만 특사경 지명·추천권이 있는 현행법으로 인해 특사경이 사문화되고 있다는 판단하에 지난해 9월 박용진 의원 등은 금감원장에게도 특사경 지명·추천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현재 특사경이 도입된 대다수의 기관에서는 해당기관장이 특사경 추천·지명 권한을 갖고 있다.
원승연 부원장은 “특사경 도입 등을 통해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를 엄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원 부원장은 이날 수 년만에 처음 영화관을 찾아 `돈`을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