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디젤게이트는 재규어에게 호재가 생각했다. 아우디 프리미엄 디젤 세단의 구매층이 이탈하면서 어쩌면 재규어에 흘러갈 가능성이 제법 높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이탈된 소비자들은 다시 한 번 ‘독일 디젤’로 쏠리는 현상을 보였다. 다만 긴 시간을 지나 다시 한 번 독일 디젤에서 꽤 소란스러운 이슈가 발생했지만 말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에서 재규어는 ‘늘 좋은 대체자’라는 느낌이다. 고민에 있어 첫 번째로 머리 속을 채우는 차량이라고 말하긴 어려움이 있는 것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재규어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추격자가 가지고 가야 할 핸디캡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재규어 XE는 통상적으로 시장의 후발 주자들이 기존 모델의 수치를 앞지르려는 ‘과욕’을 부리는 것과 다른 차분한 모습이다. 이는 체격에서도 드러나는 현상인데 4,670mm로 평범하게 느껴지는 전장은 물론이고 1,850mm의 전폭 역시 특별함은 없다. 다만 스포츠카 브랜드답게 1,415mm까지 낮춘 전고는 재규어 특유의 낮게 깔리는 실루엣을 완성한다. 덧붙여 휠베이스 2,835mm로 경쟁 모델 대비 소폭 긴 편이다.
XF가 그랬던 것처럼 파격적인 이미지는 덜하지만 재규어 XE는 재규어 가문의 가장 작은 존재지만 재규어의 디자인 테마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낮은 비례에서 시작된 여유로운 보닛과 유려한 실루엣으로 구현되는 측면은 말 그대로 재규어다운 모습이다. 특히 프론트 그릴의 구성이나 범퍼 디자인은 부인할 수 없는 재규어의 혈통을 느낄 수 있다.
살짝 긴장되어 있는 전면 디자인에 비해 차분하고 여유롭게 느껴지는 후면 디자인은 자칫 XE를 온순한 컴포트 세단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독특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가 차체 실루엣에 따라 완만하게 처리되고, 차체 하단부 역시 곡선으로 마무리된 영향으로 이해된다. XE는 전체적으로 스포티하기 보다는 ‘우아하고 여유로운’ 프리미엄 세단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XE는 작은 차량이지만 그 어떤 모델보다 재규어답다. ‘랩어라운드’의 디자인 구성으로 낮은 대시보드를 선보이며 고급스럽고 호화스러운 감성을 자아낸다. 특히 넓게 그려진 가죽 패널 덕에 그 고급감은 더욱 배다된다. 한편 대시보드의 높이가 무척 낮은 것이 특징인데 대시보드 보다 보닛 파워돔이 더 높게 솟아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을 정도라 이색적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엔트리 모델답게 전체적인 구성이 무척 간결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레이어드 타입 대신 깔끔하게 구성된 대시보드에 재규어 고유의 3-스포크 스티어링 휠, 그리고 깔끔하게 마련된 센터페시아와 계기판으로 우수한 완성도를 연출한다. 다만 스포크의 버튼 구성에 있어서 막상 사용하는 버튼의 크기가 작아 ‘버려지는 공간’이 많은 점은 아쉬웠다.
다만 2열 공간은 협소하다. ATS도 마찬가지였지만 2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독일 3사를 따라갈 수 없는 듯 하다. 물론 성인 남성도 앉을 수 있는 공간 자체는 확보했지만 승하차시 머리를 숙이고 타야하는 새로운 습관을 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단 승차하고난 뒤에는 헤드룸에 특별히 좁다는 느낌은 없다. 과하게 표현하면 휠베이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느낌이다.
재규어의 차량을 경험하며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 있다면 사운드와 파워 디젤 엔진의 완성도라 할 수 있다. XE 역시 재규어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는 인제니움 디젤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파워트레인이 탑재됐다. 최고 출력 180마력, 최대 토크 43.9kg.m의 인제니움 디젤 엔진은 동급의 디젤 엔진과 비교 했을 때에도 수치적 우위를 점하며 ZF 사에서 공급하는 8단 자동 변속기와 호흡을 맞춘다. 공인 연비는 14.5km/L(도심 12.6km/L 고속 17.6km/L)를 달성했다
재규어 XE의 시승을 위해 도어를 열고 시트에 몸을 맡겼다. 스포츠카 브랜드를 자처하는 재규어인 만큼 낮은 시트 포지션과 꽤나 스포티하게 몸을 지지하는 시트를 느낄 수 있었다. 낮은 시트 포지션 덕에 전방 시야가, 그리고 좁은 윈도우 덕에 측/후방 시야가 다소 좁은 편이지만 조금만 적응하면 문제 없을 수준이었다.
잠시 후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자 인제니움 디젤 엔진의 경쟁력이 돋보인다. 미세한 진동과 엔진음이 들려오지만 디젤 세단으로서는 무척 고요한 모습이다. 최근 많은 브랜드들이 정숙성을 앞세운 디젤 엔진을 선보이고 있으나 인제니움 디젤 역시 프리미엄 디젤 세단에 어울리는 ‘격조 있는 엔진’이었다.
실제 XE를 처음 경험하는 운전자는 XE의 가속이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꽤나 묵직하되 가볍게 치고 나가는 느낌은 다소 덜한 편이다. 하지만 이는 재규어 특유의 점진적인 셋업일 뿐이지, 막상 계기판의 속도계는 빠르게 움직이며 최근 디젤 세단에 요구하는 소비자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킨다.
엔진에 가려져 있어 그렇지 변속기에 대한 만족감도 상당하다. 다양한 주행 상황에서 마주할 수 있는 킥 다운이나 쉬프트 다운 상황에도 동력이 전달되는 느낌을 ‘완성도 높은 감성’으로 풀어내며 운전자의 입가에 미소가 머물게 만든다. 게다가 넉넉한 토크는 불필요한 변속 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점진적이고 꾸준한 가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해 고급스러움에도 힘을 더한다.
점진적인 발진처럼 제동 역시 리니어하면서도 정교함이 돋보인다. 출력을 압도하는 수준의 막강한 제동력은 아니지만 스포츠 드라이빙 시에도 문제 없을 수준의 제동력은 물론 꾸준하게 제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내구성도 갖춰 운전자 입장에서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더블 위시본과 인테그랄 링크 서스펜션을 활용한 만큼 승차감은 물론 스포츠 드라이빙에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이 이어졌다.
안좋은점: 2열 공간의 열악한 경쟁력, 어딘가 밋밋한 외형
재규어 XE는 프리미엄 콤팩트 시장에 대한 도전을 알리는 재규어의 선봉장으로 뛰어난 경쟁력을갖췄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성과는 다소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재규어 XE는 감히 시장의 많은 사랑을 받기 충분한 존재감과 상품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경쟁력을 믿고 향후 재규어 XE가 더욱 발전하고, 이와 함께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