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정책에 멍드는 경제]"어떻게 한번에 두배 올리나"…곳곳서 아우성

기업 노동비용 뿐 아니라 관리비용 급증
저비용 고효율 구조 포기…경제활동에 타격
"정책 방향 맞아도 과속하면 사고난다"
  • 등록 2019-01-23 오전 4:56:00

    수정 2019-01-23 오전 4:56:00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방향은 맞죠. 그런데 좀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길은 맞아도 과속하다보면 사고나기 마련입니다. ”(H 중소기업 대표)

최저임금 인상, 감사비 인상을 통한 감사품질 강화,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 방향 자체는 맞다는 게 여론이다. 노동구조를 보다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올려야 하고 기업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면 회계 표준시간감사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이고 제각각이었던 현실화율을 조정해 형평성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너무 단기간에 급하게 추진하려다 보니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경제주체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야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당초 목표했던 정책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정책 예측 가능성과 신뢰도도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 패닉…경제지표 쇼크

최저임금이 2년 새 30% 가까이 오르자 당장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시간당 최저임금 8000원이 넘는 시대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채용을 줄이는 방법 뿐이었다. 실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고용쇼크로 이어졌다. 지난해 취업자 수 증가폭은 9만7000명으로 9년만에 최저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17년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실업률이 치솟은 데에는 경기둔화나 산업 구조조정 영향도 있었지만, 최저임금은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19년 최저임금 인상이 발표된 작년 8월 이후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접업에서 임시·일용직이 감소했을 뿐 아니라 상용직과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도 위축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회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작년과 올해) 최저임금이 두 단계를 뛰니 너무 과한 상태”라며 “최저임금이 과도한 부담이 돼 기업은 더 소화할 능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작년 말에 취임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이를 두고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위한 수순이라는 시각이 높다.

회계비용의 급격한 증가도 기업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중심으로 회계투명성을 높이고 회계품질을 강화하기 위해 표준감사시간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아직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해 도입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회계법인들은 이미 도입을 전제로 감사비를 높여 부르는 실정이다. 일례로 EY한영은 올해 한 증권사와 감사계약을 연장하면서 감사시간을 1만2000시간 정도로 책정하고 비용을 두배 높여서 불렀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표준감사시간제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회계법인들의 감사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회계 품질을 높이고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한번에 1.5배, 2배씩 올리는 것은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 공시가 급등으로 조세저항도 거세…홍영표 “점진적 현실화 필요”


부동산 시장에서는 공시가격 급격한 현실화에 따른 보유세 폭탄을 우려하고 있다. 올해 전국 표준단독주택과 표준지 공시가격은 전년대비 평균 10%대 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3년 새 전국 표준주택 상승률은 4~5%, 표준공시지가 상승률은 4~6%였음을 감안할 때 올해 공시가 상승폭은 상당히 가파른 셈이다. 이는 고가의 단독주택 및 토지의 공시가격이 실제 가격의 50%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에 따라 반영율을 높인 데에 따른 것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세무사)에 의뢰해 표준단독주택에 대한 보유세 인상폭을 산출한 결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한 단독주택의 재산세는 전년대비 43.31% 늘어난다. 이 주택의 공시가격은 작년 5억4000만원에서 올해 5억9800만원으로 10.74% 올랐다. 이는 집주인이 1주택자일 경우고, 만일 다주택자면 재산세는 껑충 뛴다.

공시가격 현실화에 대한 국민 여론은 ‘필요하다’는 쪽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국민들도 현재 시세의 50%에 못 미쳤던 단독주택이나 토지의 공시가격을 현실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최근 간담회에서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세금폭탄’ 우려가 있지만 집값이 오른 만큼 최소한 반영돼야 한다는 데 국민 공감대가 있다고 본다”며 “초고가 주택은 아파트보다 현실화율이 현격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공시가격은 1차적으로는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부과하는 기준이지만 각종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기초생활수급 등의 기준으로도 활용된다. 공시가 상승에 따라 피부로 느끼는 부담이 몇 배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조세저항이 거세질 수밖에 없고 경기둔화에 그나마 지갑을 열 수 있는 중산층의 소비여력도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사실 공시가 현실화는 최소 10년은 잡고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부동산 경기도 침체되고 있는데 공시가까지 급등하면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경기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세가 꺾이면서 지갑을 닫는 ‘역의 부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데 여기에 세금 부담까지 늘면 더욱 소비를 줄이게 되고 경제 활력도 잃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같은 우려가 높아지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2일 당정청 회의에 앞서 “서민과 중산층이 거주하는 중저가 주택의 경우 급격히 부담이 늘지 않게 점진적으로 현실화하는 방향이 필요하다”며 속도 조절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

정책효과 보려면 물 스며들듯 천천히…코디네이션 기능도 중요

정책이 아무리 좋고 정당성을 갖추고 있어도 너무 급격하게 변화를 주면 오히려 반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물이 스며들듯 천천히 시행해야 애초 의도했던 정책효과가 더 잘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책 하나 하나 보면 다 맞는 말이지만 합쳐놓으면 너무 많은 비용이 수반되고 이로인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속도조절을 하면서 더 시급한 정책을 먼저 시행하는 식의 코디네이션 기능을 정부와 청와대가 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런 기능이 전혀 없어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더욱 찬물을 뿌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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