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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안승찬 기자] “정부가 세금을 거둬 보도블럭을 새로 깔아주는 게 좋은가? 아니면 세금을 덜 내고 그 돈으로 애들 학원을 보내는 게 좋은가?”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 교수가 먼저 물었다. 그는 “정부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다”라고 했다.
- 정부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라는 게 무슨 뜻인지.
△정부도 돈을 어디선가 가져와야 한다. 재원조달 방법은 세 가지다. 우선 세금, 두 번째는 국채발행, 그런데 국채발행은 미래의 세금이다. 자식들한테 돈을 빌리는 것이다. 정부도 파산하지 않는 이상 갚아야 한다. 마지막은 돈을 찍는 것. 근데 이게 또 공짜가 아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현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돈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 소위 인플레이션 택스(주조수입, Seigniorage)다.
정부에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는데, 결국 다 우리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이들은 산타클로스가 공짜로 선물을 주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산타는 아빠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산타가 아니다.
- 대부분은 경기 부양을 위해 쓰지 않는가.
과연 그렇게 해서 GDP를 올리는 게 좋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너무 GDP에 매몰돼 있다. GDP 2%, 3% 맞추려고 애쓰는데,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가 더 중요하다. 차라리 이걸 내가 쓰고 싶은데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소득 측면에서만 보면 GDP 상승이 좋아보이겠지만, 돈 쓰는 소비의 질(質)도 생각해야 한다. 보도블럭이 새 것이 되면 물론 좋다. 하지만 아이들 학원비로 쓰고 싶은 돈으로 그렇게 한다면 싫다.
- 감세로 가자는 것인가.
△나는 짜장면을 좋아하는데 누가 자꾸 짬뽕만 사준다. 공짜니까 먹긴 한다. 하지만 돈으로 주면 짜장면을 사먹을 수 있다. 감세로 가면 내가 쓰고 싶은데 내가 쓰는 것이고, 증세로 가면 정부가 세금으로 거둬서 대신 쓰는 것이다. 공무원이 쓰는 게 좋은지 내가 쓰는 게 좋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감세를 했는데 소비가 없다? 왜 그런지 살펴봐야 한다. 간단하다. 쓰기 싫어서다. 주로 미래가 불확실해서다. 그래서 모아두려고 하는데 자꾸 쓰라고 하면 좋겠는가. 또는 대신 써주겠다면 좋겠는가.
- 케인즈 학파에선 돈을 풀어 수요를 창출하는 게 정부 역할이라는데.
△아무리 시장에 맡기고 정부 개입을 줄이자고 해도 분명 정부의 기능과 역할은 있다. 예를 들어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데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 정부의 마중물 효과가 나에게 이득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 때문에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또는 모아두고 싶은 돈을 포기할 것인가. 정부 역할을 늘리는 건 좋은데 한 번 늘어난 걸 줄이기 쉽지 않은 것도 문제다. 세상에서 제일 일자리 쉽게 늘리는 건 정부 일자리, 공무원 일자리 늘리는 것이다. 한 번 늘린 다음 줄일 수 있겠는가.
-결국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시장한테 맡기자고 하는 것이다. 당사자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짜장면 먹고 싶은지 짬뽕 먹고 싶은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결국 시장만큼 효율적인 게 없다는 뜻이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올지 모르지만 인류 역사를 봐도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 왕이 지배하는 사회를 거쳤지만 현재까지는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 즉 자본주의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 누군가 한국 아이돌이 어떻게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수 있었는지 물었다. 한국에선 엔터테이너에 대해 소위 ‘딴따라’라는 인식이 있어서 정부가 개입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완전 자율 경쟁 시장이 됐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지금의 K-POP 아이돌을 탄생시켰다고 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 결과다.
- 시장이 결정하게 놔두면 불평등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가.
△그건 당연하다. 근데 다 똑같이 만들면 북한이다. 결국 공정한 게임 문제로 다시 돌아간다. 공정한 룰 안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또 받아들일 수 있다. 대신 패자도 우리가 어루만져주고 같이 과실을 나눠먹을 수 있도록 재분배를 잘 해야 한다. 공정한 게임, 공정한 룰 안에서 경쟁이 이뤄지게 하면 된다. 대신 공정거래위원회 역할이 정말로 중요하다.
- 미국처럼 다 풀어준 뒤 잘못하면 나중에 세게 제재하고?
△그게 정말로 효율적인 방법이다.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걸 해보려고 하면 어느 분야든 선례가 없다는 얘기를 제일 먼저 한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그런 식이면 끝까지 새로운 건 해보지도 못한다. 과연 창조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다 풀어주고 난 뒤 나쁜 짓을 하면 확실하게 혼을 내면 된다. ‘이것만 해라’라고 하면 새로운 걸 하지 못한다. 기업들도 우린 나쁜 짓 안할테니 우리가 잘못하면 과징금도 받고 집단소송도 받아들이겠다 하면 된다. 다만 원칙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공정위 역할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