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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日 등 순기능 극대화·역기능 최소화 노동개혁
영국은 ‘0시간 계약(zero hour contract)’ 노동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국의 0시간 계약은 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을 말한다.
이들은 인력중개 플랫폼에 등록한 뒤 일이 있을 때만 연락을 받고 출근한다. 일이 많을 땐 밤새워 일하기도 하지만, 일이 없을 때는 아예 쉬는 일종의 ‘5분 대기조’다. 근로조건이 파트타임 근로자보다 못한 탓에 노예계약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0시간 계약 노동자들은 영국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한 2011년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0시간 노동자는 2012년 4분기 25만명에서 2013년 4분기엔 58만6000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현재는 약 100만~110만명으로 추정된다. 0시간 노동자는 사업자 계약을 맺는 특수고용형태여서 비정규직 보호대상이 아니다.
0시간 근로가 늘어난데는 최저임금 인상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0월 영국 내 0시간 계약자 2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0시간 계약을 늘린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 충격 완화를 꼽았다. 영국은 작년 초 25세 이상 노동자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7.83파운드(원화기준·1만1810원)로 인상했다. 지난 2012년 시간당 6.19파운드(9340원)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0시간 노동형태가 확산하면서 노동시장의 고용환경 악화를 우려한 영국정부는 지난해 12월엔 플랫폼 노동자 권리를 보장·강화하는 내용의 ‘굿워크플랜’을 발표했다. 유연한 근무형태는 유지하되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는 게 골자다.
영국정부는 플랫폼을 통해 노동자를 채용했더라도 기본적으로는 독립사업자가 아닌 파트타임 근로자로 간주하기로 했다. 또 기업들에게 복지부담금도 부과하는 등 고용 책임을 확대했다.
일본은 지난해 6월 ‘일하는 방식 개혁’ 법률을 제정했다. 1947년 이후 가장 중요한 노동개혁이라고 평가받는 이 법에는 질 낮은 일자리 확산으로 인한 고용환경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들이 포함됐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의 최저임금과 법정 노동시간(하루 8시간) 보장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다. 미국은 최근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공정노동기준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행정 해석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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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상대적으로 아직 플랫폼 노동자 비중이 크지 않지만 배달의민족, 쿠팡플렉스 등과 같은 온디맨드(주문형) 서비스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재능공유 플랫폼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존 체계로는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기 어렵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승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전통적인 개념의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틀에서 사실상 소외돼 있다”면서 “새로운 고용형태로 봐야할 것인지, 노동자성을 인정할 것인지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존 공장제 시대의 고용·산재보험을 넘어, 소득 실태·작업 내용 등을 고려해 알맞은 사회안전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한국 사회 전체 사회안전망 체계 재정립과도 맞물려 있어 단기간에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디지털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면 노동자들의 고용 안전성이 약화할 수 밖에 없어서다.
그는 이어 “현 정부 정책도 방향은 일치하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은 플랫폼 경제·고도화 경제 시대에 적절치 않을 수 있다. 또 고소득 계층의 부를 어떻게 복지로 잘 배분할 것인지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