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금수저’ 위장전입자들

  • 등록 2018-09-14 오전 6:00:00

    수정 2018-09-14 오전 6:00:00

역대 대통령 중에서 위장전입자들에 대해 가장 관대했던 사람을 꼽으라 하면 아마 이명박 대통령이 지목될 만하다. 그 자신이 위장전입자였다. 민간기업에 근무하던 시절 네 차례에 걸쳐 위장전입을 했던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자녀들을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였다는 해명이었다. 당시 정부 부처 장관들을 임명하면서 위장전입자라 해도 자녀 교육을 위한 경우라면 면죄부를 부여하는 관행이 마련된 것도 그 자신의 기준에 맞춘 것이었다.

적어도 아파트를 편법으로 분양받으려고 주소를 몰래 옮기는 경우와는 달리 대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읽게 된다. 그러나 엄연한 불법행위를 놓고 어떤 경우는 되고, 어떤 경우는 안 된다며 구분을 지은 것부터가 자의적인 발상이었다. 마치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집을 옮겼다는 맹자(孟子) 어머니의 얘기를 떠올렸음 직하다. 법 앞에 어느 누구도 평등하다고 하면서 스스로 불법에 눈감은 꼴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적폐’라는 비중으로 따진다면 그 어떤 과오보다 막중하다. 이후 정부가 바뀌고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위장전입자들이 태연하게 청문회장에 얼굴을 내밀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무감각하게 변해 버린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국무총리 지명을 받았던 장상·장대환 후보와 노무현 정부 당시의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위장전입 전력으로 도중하차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도덕적 기준이 상당히 느슨해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설령 순수한 교육 목적이라도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어려서부터 좋은 학교에 다닐수록 일류 직장에 들어갈 확률이 커진다는 것은 이미 사회적인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구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음은 물론이다. 부모 잘 만난 ‘금수저’들이 시작 단계에서부터 위장전입으로 학교를 옮겨다니는 데야 ‘흙수저’들은 마땅히 하소연할 데도 없다.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마음만으로 용인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러한 폐단이 서민들을 위한다는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까지 횡행한다는 건 너무 서글프다. 지위와 돈이 있는 지도층일수록 위장전입이라는 편법에 기대는 모습이다. 시기적으로 면책될 수 있는 예외 범위를 두었건만 그 기준도 허물어지고 있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상대방의 티끌을 비난하면서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모른 체하는 심보가 더 야속하다.

이미 이낙연 국무총리부터 위장전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강경화 외교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새로 장관으로 지명된 사람들 중에서도 위장전입 의혹 대상자들이 어김없이 포함돼 있다. 유은혜·이재갑·정경두 후보자가 그들이다. 이러고도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부를 내세운다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법률을 따진다는 헌법재판관 후보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더군다나 친정어머니와 아내에게 애꿎은 책임을 돌리고 있으니, 뻔히 눈뜨고 바라보는 국민들을 마치 핫바지로 여기는 투다.

정말로 궁금한 것은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의 의중이다. 지난해 조각 단계에서 후보자들의 흠결이 적잖이 드러난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고도 또 다시 비슷한 경로를 걸어가는 중이다. 우리 사회에 경륜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도덕적으로도 흠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팔이 뻗치는 좁은 범위 안에서만 사람을 구하다 보니 제대로 인물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위장전입자들의 내각이라는 불명예만큼은 피하기를 바란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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