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미국과 유럽의 차이

  • 등록 2019-02-20 오전 5:00:00

    수정 2019-02-20 오전 5:00:00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미국은 탐욕이 문제이고, 유럽은 복지가 문제다.’

미국 금융 위기와 유럽 재정 위기가 연이어 터졌을 당시 경제학자는 두 지역을 이렇게 진단했다. 선진국 경제 위기의 원인을 정리한 말인데 미국은 부동산과 관련한 탐욕 때문에 사고가 났고, 유럽
은 정부가 감당하기 힘든 혜택을 국민에게 나눠주다 나라가 망가졌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1년에 2200시간을 일한다. 유럽은 1700~1900시간 정도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쉰다. 6주 이상 휴가가 보통이어서 세상의 많은 오지 휴양소에 유럽 사람들이 넘쳐난다. 물론 미국 사람들도 휴가를 가기는 한다. 기간이 유럽보다 짧고 휴가 가기 전에 죽기 살기로 일해야 해서 문제지만.

유럽 사람들의 삶이 미국보다 여유가 있는 건 나라가 많은 부분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우선 유럽에서는 퇴직한 후에도 회사 다닐 때 임금의 70%를 연금으로 받는다. 미국은 훨씬 낮다. 독일에서 대학 등록금으로 100유로를 받겠다고 했다가 난리가 났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한해 등록금은 4만 유로가 넘는다. 유럽은 공공의료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미국은 개인 의료보험을 들어야 한다.

이런 제도가 도입되기까지 유럽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여러 차례 혁명과 정치적 격변을 치렀는데 이 과정에서 빈부 격차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달았다. 경험이 현재를 만든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복지 정책을 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유럽 사람들은 다른 어떤 곳보다 세금을 많이 낸다. 평균적으로 한해 번 돈의 48%가 세금으로 나갈 정도다. 미국은 41%가 채 안 된다. 그래도 유럽 사람들이 세금 때문에 불평하지 않는 건 미국은 낸 돈보다 작은 혜택을 받는 반면, 유럽은 낸 돈 이상의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GNI)이 3만 달러를 넘는 나라가 됐다. 그 앞 여섯 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지금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거나 과거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다. 그만큼 우리도 무시할 수 없는 경제 규모와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우리도 경제 운용의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지금까지는 성장이 최우선의 가치였다. 분배나 복지를 생각하기에는 만들어진 파이가 너무 작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르다. 한국 경제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복지 수준을 높여 이를 또 하나의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복지를 언제 시작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정해진 시점이 없다. 유럽 같은 경우에는 전쟁이나 경제 위기로 가장 어려울 때부터 복지를 시행하기로 사회적 합의를 모았다. 우리는 지금이 그 때다. 우리 경제가 더 이상 높은 성장을 하기 힘든 상태가 됐다. 경제가 성숙단계에 들어갔기 때문인데 유럽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도 이 시기에는 성장률이 2%를 넘지 못했다. 대신 앞으로 분배에 대한 요구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절대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 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경제 규모가 더 커진 이후에’라는 말로 요구를 무마해 왔지만 이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음이 분명해지면서 경제 규모가 커진다 해도 불평등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증명됐기 때문이다. 성장을 대체할 새로운 담론이 필요한 데 자연스럽게 복지가 그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 일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역할이라면 유럽이 답이다. 반대로 개인의 능력에 모든 걸 맡긴다면 미국이 답이다. 외환위기 직후 ‘2대 8 사회’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20%에 속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 전체의 부를 독점하는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는 얘기인데 지금은 1%대 99%로 바뀌었다. 미국식 모델이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장기적인 정책 방향으로 분배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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