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백석광, 12년 만에 춤을 춥니다 '김남건'으로

2004년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으로 주목
탄탄대로 펼쳐진 무용 대신 연극 선택
국립현대무용단 '댄서 하우스' 출연
"녹슨 몸 먼지 쌓인 춤…내 삶 보여줄 것"
  • 등록 2017-12-05 오전 5:30:00

    수정 2017-12-05 오전 5:30:00

국립현대무용단 ‘댄서 하우스’에 출연하는 김남건(배우명 백석광)(사진=국립현대무용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여보세요. 백석광입니다. 네? 춤을 춰달라고요?” 연극배우 백석광(34·본명 김남건)은 지난여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국립현대무용단 안수진 PD로부터 작품에 출연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지난해까지 국립극단 시즌 단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속으로 ‘이제는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녹봉을 주려는 건가’라고 생각하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무용수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안 PD의 제안은 진지했다. “예전에는 무용수였잖아요.”

백석광, 아니 김남건이 12년 만에 무대에서 춤을 춘다. 백석광은 예전 무용수로 활동할 때 김남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댄서 하우스’(8~12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를 통해서다. 6명의 춤꾼들(김남건·김용걸·김지영·성창용·최수진·한예리)이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나누는 공연이다. 김남건은 오는 11일과 12일 공연 1부를 장식할 예정이다. 무용수로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만큼 마음가짐도 다르다.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내 국립현대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오늘은 백석광이 아닌 김남건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며 웃었다.

◇무용수로 유명…답답함에 연극으로

국립현대무용단 ‘댄서 하우스’에 출연하는 김남건(배우명 백석광)(사진=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의 출연 제안을 수락하기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사람들이 “이미 녹슨 몸으로 추는 먼지 쌓인 춤”을 보고 싶을지, “춤을 추지 않은 시간의 삶”에 관심이 있을지 몰랐다.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닌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춤을 선보인다는 기획 의도 때문이었다.

공연의 방점은 춤보다 삶에 놓여 있다. 김남건은 “화석이 된 과거의 춤을 다시 꺼낼 때 새로운 사유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씨앗을 품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은 그 씨앗이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른다. 김남건은 “공연 당일 최대한 자연스럽고 솔직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그 순간의 감정으로 내 인생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건은 무용계에서 유명한 무용수였다. 한국종합예술학교(이하 한예종) 무용원에 재학 중이던 2004년 직접 안무한 ‘청아, 청아!’로 동아무용콩쿠르 일반부 대상을 받으면서 무용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안무 능력이 탁월하며 테크닉과 표현력 모두 매우 우수”하다면서 그의 춤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무용수로 탄탄대로가 펼쳐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돌연 춤을 그만뒀다. 2005년 인천시립무용단의 초청 공연으로 선보인 ‘기침을 해도 나 홀로’가 무용수로 마지막 작품이었다. 무용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자신이 느낀 걸 몸으로 고스란히 표현했지만 뜻한 만큼 전달이 되지 않아 답답했다. 춤보다는 인맥을 만드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던 당시 무용계의 현실도 춤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결국 한예종 무용원을 중퇴한 그는 같은 학교 연극원 연출과로 재입학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녹슨 춤이라도 자연스러움 그대로”

국립현대무용단 ‘댄서 하우스’에 출연하는 김남건(배우명 백석광)(사진=국립현대무용단).
무용계는 김남건의 명성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이번 공연에서 그가 어떤 춤을 출지 궁금증이 크다. 김남건 또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힌트는 그가 쓴 일기에 있다. 김남건은 “무용을 그만 둘 무렵 쓴 일기에 만약 다시 춤을 춘다면 어떤 춤을 추고 싶은지를 적은 내용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12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생각만큼의 춤을 못 출 수도 있다. 그는 “춤을 추더라도 녹슨 춤이 될 것이고 어쩌면 춤을 추다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다”면서 “무용을 넘어 현대예술로서의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무용수 대신 연극배우를, 김남건의 이름 대신 백석광을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나의 욕망을 비워낸 상태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번 공연에서도 정해진 춤을 추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백석광이라는 이름은 한예종 연극원에서 PD를 맡을 당시 배우로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서 배우명으로 쓰게 됐다. 뜻은 ‘빛나는 하얀 돌’. 그말처럼 연극배우로도 김남건의 재능은 빛났다. 2014년 연출가 이윤택의 연극 ‘혜경궁 홍씨’에서 사도세자 역을 맡아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국립극단 시즌 단원으로 활동하며 ‘문제적 인간 연산’ ‘로베르토 쥬코’ ‘실수연발’ 등에 출연했다. 현재는 한예종 출신 친구들과 함께 꾸린 극단 아어에서 활동 중이다.

연극배우 이전에는 단편영화 감독으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2008년 미장센단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2013년 대종상단편영화제 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 연극에서만 아직까지 상을 받지 못했다. 김남건은 “연극의 시계로 본다면 나는 아직 젊다”면서 “지금 나의 터전은 연극이기에 나를 안 써줄 때까지 연극과 연기만 붙잡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댄서 하우스’를 놓치면 당분간 무용수 김남건을 만나기 힘들다. 그는 “배우로 열심히 살다 나중에 노인이 돼 다시 ‘댄서 하우스’에 출연할 기회가 생겨 그때 다시 한 번 내 인생을 돌아보는 무대를 선보인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며 웃었다.

국립현대무용단 ‘댄서 하우스’에 출연하는 김남건(배우명 백석광)의 연습 장면(사진=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 ‘댄서 하우스’에 출연하는 김남건(배우명 백석광)의 연습 장면(사진=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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