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 다 잡았다더니…시간선택제 공무원 '유명무실'

2015년 1297명→ 올해 21명 채용 그쳐
文 정부 들어 의무비율 삭제…임용령 개정 전에 채용 급감
공무원연금 가입 등 처우개선 진행형…신규채용은 '뚝'
"수요조사·장기계획 없이 정부시책 급급한 전시행정"
  • 등록 2018-03-12 오전 5:40:00

    수정 2018-03-12 오전 9:26:41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강원도 소재 시청에서 근무하는 박지원(가명)씨는 지난 2015년 시간선택제 공무원으로 입사했다. 하루 4시간만 일하는 시간제였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시간제를 적용하기 어려운 시청 업무 특성상 발령을 받자마자 4번 연속 부서가 바뀌었다. 어떤 부서에서도 ‘반쪽짜리’ 일만 하는 시간제 직원을 받고 싶어하지 않아서다. 초과근무가 빈번했지만 시간제라는 이유만으로 각종 수당은 절반만 받았고 승진도 전일제 공무원의 2배의 기간이 필요했다. 초과근무시 시간제 공무원에게만 식대가 지급되지 않은 적도 있다. 2014년부터 매년 20명 이상씩 시간제로 채용한 강원도는 정권이 바뀌고 의무채용비율 삭제 방침이 정해지면서 올해 시간제 채용인원을 2명으로 줄였다.

지난 2013년 도입해 연간 1000명 이상 채용했던 시간선택제 공무원(이하 시간제 공무원)의 채용인원이 급감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고용률 70%’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무채용비율까지 정하면서 대대적인 채용에 나섰지만 여러 부작용에 정권까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소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수요조사와 장기계획 없이 정부시책 따르기에만 급급해 인력채용을 한 결과라며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2015년 1297명→2018년 21명으로 급감

1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시간제 공무원 채용규모는 21명으로 집계됐다.

시간제 공무원은 2014년 738명에서 2015년과 2016년은 각각 1297명, 1241명을 뽑았고 지난해에는 855명을 선발했다. 매년 천명 내외로 뽑던 시간제 공무원의 채용규모가 순식간에 두자릿수로 급감한 셈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정부정책상 시간제 공무원을 의무적으로 선발했지만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올해는 임용권자인 지자체장의 자율로 맡겼다”며 “공채는 21명을 선발하지만 경력채용전형이 남아 있어 올해 시간제 채용인원규모가 확정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채용형 시간선택제 공무원이란 업무능력과 근로의욕은 있지만 전일(全日)근무가 어려운 인재들을 위해 하루 4시간(주 20시간)만 근무만 하되 정년을 보장하는 직위로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처음 도입했다. 전일제 공무원은 육아 등의 이유로 시간선택제로 전환할 수 있지만 애초부터 시간선택제도 입사한 채용형 시간제 공무원은 전일제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

당시 정부는 경력단절여성 등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공채 또는 경력시험 선발예정인원의 1% 이상을 시간제 공무원으로 채우는 의무비율까지 정해 채용을 사실상 강제했다. 이에 중앙부처와 지자체, 경찰청 등에서 지난 4년간 4000명 이상을 선발했다.

하지만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 가입이 안되는 등 지위가 불확실하고 잦은 초과근무와 수당 및 승진 부문에서 일반 전일제 공무원과 차별적인 요소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여기에 시간제를 원하는 경단녀들을 주로 경력시험을 통해 채용한 국가직 공무원과는 달리 지방직은 당초 전일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준비생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결국 절반 이상이 퇴직하거나 합격하고도 임용을 포기 혹은 유예하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말 의무채용비율 1%를 삭제한다고 발표했다.

1년 만에 뒤바뀐 정책 방향…“전시행정의 대표사례”

지난해 2월 행정안전부는 “일·가정 양립문화 확산과 공공부분 일자리 창출 지원을 위해 시간선택제 공무원 확대를 추진한다”며 각 부처에서 인력요구시 시간제에 적합한 직위를 의무적으로 발굴토록 했다. 특히 시간제 근무적합분야는 요구정원의 20% 이상을 시간제 공무원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행안부가 서울시에 보낸 공문에도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를 위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공부문 시간제 채용목표를 10%로 추진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인사혁신처 역시 “시간제 채용으로 일·육아·가정을 모두 잡았다”고 치켜세우며 제도 확대를 발표했다. 각 부처에서 시간제 채용을 독려한 게 불과 1년 전이다.

박주원 전국통합공무원노조 시간선택제본부 강원도 지부장은 “지자체에서 일하는 지방직 공무원은 시간선택제에 적합한 일자리가 거의 없는데도 당시 고용률 70%라는 목표 맞추기에 급급하다보니 많이 뽑았다. 하지만 공무원 사회 내에서 시간제 공무원은 변형된 비정규직이었을 뿐”이라며 “정권이 바뀐 후 정부 방침이 완전 달라지면서 올해 채용은 거의 전무한 상태”라고 말했다.

윤종인 행안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지난 정부에는 시간제 공무원 활성화로 정책 방향을 잡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막상 운영해보니 같은 공무원인데도 차별적 요소가 많다는 불만이 있었고 의무채용비율은 지방분권 차원에서도 없애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라는 면에서 제도 폐지 계획은 없다. 같은 직위 내에서 차별적인 부분이 있다면 개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말 시간제 공무원의 공무원연금 가입은 도입 4년여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문가들은 수요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책설계가 정교하지 못해 발생한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고 꼬집는다.

정진우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누구라도 직장을 구하면 그 다음은 승진과 보수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제 공무원은 평생 일할 수 있는 여건과 승진체계가 미비한 제도”라며 “시간제가 적합한 직위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장기계획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만 뽑다보니 이런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공무원은 유연근무제나 단축근무가 활성화돼 있어 시간제 채용이 굳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결국 일자리 증가라는 정부시책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뽑기만 한 땜질식 처방”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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