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to 6'로 일하는데, 돌아온 돈은 월 16만원?

  • 등록 2019-05-21 오전 12:42:41

    수정 2019-05-21 오전 12:42:41

(사진=이미지투데이)


"경력 줄게, 열정 다오"...실습생으로 인건비 아껴

김은정(가명·23세) 씨는 졸업을 앞두고 한학기를 현장실습으로 대체했다. 회사에서 넉 달을 일하고 번 돈은 64만원가량이 전부였다. 이유는 '등록금' 때문이었다.

김씨는 학점 인정을 받기 위해 학교에 330만원의 등록금을 내고 일을 시작했다. 첫 두 달은 정부지원금을 포함해 회사로부터 매달 80만원을 받았고, 나머지 두 달에는 40만원씩 받았다. 넉 달 동안 회사에서 받은 돈 240만원과 실습 후 받은 학교 지원금 160만원(매달 40만원)을 합하니 약 400만원이었다. 번 돈에서 등록금을 제외하니 월 16만원을 받고 일한 셈이었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체계적인 교육 없이 업무에 필요한 기술은 어깨너머로 배워야 했다.

김 씨가 일하던 40명 내외의 조직에서 인턴은 10명이 넘었다. 사실상 인턴이 주 인력이었다. 모두 산학협력 현장실습생으로 뽑았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월 157만원(2018년 기준)인 인건비를 인당 40만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 모든 실습생을 더하면 월 1400만원가량을 아끼면서 일을 시키고 있는 셈이다.

대학생 현장실습은 대학과 기업체가 산학협력을 맺고 학생이 실습과정을 수료하는 제도다. 고용노동부의 '일경험 수련생의 법적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특정시기 또는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에 근로자를 대체해 수련생을 활용하면 실질적 근로에 해당한다. 이 경우, 수련생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실습지원비가 지급돼야 한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교육의 과정이라고 할지라도 기업체는 학생들의 노동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노동 행위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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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급 노동 항의하니 '주 7일 일해라'

박민정(가명·24세) 씨는 지난해 겨울 계절학기 현장실습에 지원했다. 원하던 회사의 기업지원금은 무급이었지만 주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이었다. 학교 측도 실습생으로 가기 때문에 많은 일을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지원한 마케팅 업무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두 달 정도 일하고 주말 아르바이트와 병행이 어려워 회사에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건 '한 달에 30만원을 줄테니 부족한 돈은 주말에 자사 아르바이트를 통해 충당하라'는 말 뿐이었다. 박씨는 "주 7일 일하라는 불가능한 해결책이 황당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박 씨는 제대로 된 마케팅 업무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기타 잡무가 80%라면 마케팅 업무는 겨우 20% 정도였다. 박씨는 때로는 배송준비 업무까지 맡았고 다른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아예 회사가 아닌 곳으로 출근하기도 했다.

대학생 현장실습 운영규정에 따르면, 실습기관은 현장실습의 목적과 범위를 벗어난 업무를 실습생에게 부과할 수 없다. 박 씨는 "함께 일했던 실습생은 아예 면접 때 택배 포장하는 일에 거부감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며 "단순 잡무는 '인턴이 안 하면 누가 하냐'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실습 후 오히려 진로를 바꿨다는 부작용도 있었다. 대학생 성민정(가명·22세) 씨는 "'인턴에게 권리가 어딨느냐'고 말하는 상사와 제때 들어오지 않는 실습비 등 이 업종 자체에 환상이 깨지고 환멸이 나서 진로를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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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의 합법화, 무급노동 대학생 약 6만명

실무 경험을 기르도록 돕는다는 현장실습의 당초 취지와 목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히려 노동 착취에 가까웠다. 현장실습 제도는 학기 단위로 사람만 바뀔 뿐 기업이 대학생을 상시인력으로 값싸게 고용하는 방법이었다.

대학정보 공시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기업으로부터 실습지원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실습생이 5만 8000여 명에 달했다. 전체 15만 명 가량의 현장실습생 중 37.8%다. 월 30만원 미만으로 받는 실습생까지 합하면 54.4%로 절반이 넘는다.

교육부는 2017년 '대학생 현장실습 운영 메뉴얼'을 전체 대학에 보급했으나 유명무실했다. 청년유니온 측은 연장근로를 방치하고 법정공휴일에도 현장실습이 가능해진 점 등을 들어 "오히려 이전의 규정보다 후퇴했다"며 비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장실습 프로세스는 마련되어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라며 "고용노동부와의 협의를 통해 부정 현장실습을 개선하기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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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감독 강화돼야..개정안은 3년째 계류 중

박민정씨는 일을 시작하기 전 '부당한 업무를 지시받거나 관련 없는 일을 시키면 반드시 이야기하라'는 학교의 당부를 들었다. 하지만 박씨는 자신이 학교에 연락해서 회사가 알게 되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고 말했다. 해당 학기의 학점 인정 여부를 회사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 그는 남은 회사생활이 평탄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

"학교에 내는 업무일지가 있긴 하지만 다 거짓말로 쓰죠. 야근한 건 당연히 못쓰고요." 박씨는 학생이 굳이 학교에 말하지 않더라도 회사에서 무슨 일을 시키는지 실제로 감독하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현장실습생들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현장실습생 제도를 고치려면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아닌 법적인 보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16년 20대 국회에서 '학생 안전 및 권리보호를 위한 현장실습 기준 마련안'과 '근로의 대가 지급안'을 신설하는 등의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으나 3년째 소관위 심사 상태로 멈춰 있다.

소관위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검토보고서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먼저 국가가 학교 수업에 대해 운영기준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점검해 공개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자율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실질적 근로와 관련한 내용을 법률에 규정하는 것은 현장실습의 본질을 흐릴 수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기원 청년유니온 노동 상담팀장은 "현장실습이 교육적 측면에서 좋은점도 있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해외처럼 교육담당자를 지정하거나 관련 없는 업무를 할 때는 급여를 지급하는 방안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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